‘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이 한마디로 상징되는 대우의 기상은 우리 젊은이들을 꿈과 희망에 부풀게 했고 세계를 향한 호연지기에 불을 지폈다. 그런 대우가 무너지다니, 아깝고 억울하고 밉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쩌랴. 잊혀져 가던 대우가 내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건 해외에서였다. 아프리카 남미 동유럽, 지난 몇 해 내가 둘러본 지구촌 구석구석에 대우는 살아 있었다. 그곳 사람들의 대우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대단했다. 아, 여기까지! 대우맨들이 흘린 피와 땀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뿐, 거기서도 대우는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이것도 국력인데, 이대로 주저앉게 내버려 두기엔 너무 아까웠다.
국내에서도 어쩌다 보게 되는 대우 간판이나 기사도 흩어진 패잔병 모습처럼 처연했다. 서울역 앞 웅장한 대우빌딩도 어쩐지 힘이 없어 보인다. 이게 나만의 감상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난주 대우로부터 강연 청탁을 받았다. 대우라니? 이게 몇 해 만인가. 모든 스케줄을 물리치고 달려갔다. 폭우 속을 달려간 무주 구천동, 나는 마냥 흥분에 들떠 있었다. 대우일렉트로닉스와 그 협력업체 직원들의 모임이었다. 워크아웃 4년, 대우전자가 이름도 바꾸고 환골탈태, 올 상반기 처음으로 엄청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정말 기분 좋은 밤이었다. 우린 밤새도록 어깨동무하고, 춤이 절로 나왔다.
그런 흥분 속에도 내 머리를 맴도는 의문, 도대체 이 기적의 부활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온 국민을 초조와 불안에 떨게 했던 격렬 시위, 모그룹의 공중분해, 워크아웃. 이런 악조건 속에 어떻게 그런 기적이?
“그렇기에 가능했습니다.” 사장의 설명이다. 네? 의아해하는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의 말은 이어진다. “노사는 물론이고 협력업체까지 오직 ‘인내와 양보’로 이룬 개가입니다. 우린 국민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5조원이나 들어먹은 처지에 무슨 요구를 더 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다 상한 자존심, 대우를 바라보는 국민의 차가운 시선, 이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고통이었습니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 오기도 발동했다. 대우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걸 보여야 한다. 이게 부활의 원동력이었다.
지금도 대우 이름으로 건재하고 있는 7, 8개 기업의 사장이 모두 대우 출신인 것도 그래서다. 노사가 따로 없다. 모두가 대우를 살려야 한다는 한마음이다. 끝없이 계속돼온 구조조정, 임금동결, 무분규, 무협상, 회사를 믿고 모든 걸 회사에 일임한 것도 ‘대우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불량률 제로, 흑자 속에도 비용 절감을 위해 비상 경영 체제를 들고 나온 것도 노조였다. 재고가 쌓이면 근무를 마친 사원들이 광고 전단지를 돌린다. 일손이 모자라면 사원 가족이 메워준다.
사원들의 진지한 자세는 회사 밖까지 감동시켰다. 적자 행진 속에 협력업체들도 참고 기다려줬다. 지자체, 은행도 대우의 피나는 노력에 감동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저는 지금도 악역을 맡은 수장입니다. 제가 부임한 지난해부터 간부의 반, 직원의 25%, 1200명의 사표를 또 받아야 했습니다.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사장의 심경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차라리 옛날에 성난 노조로부터 화형식을 두 번이나 당했던 시절이 마음 편했습니다.”
정도(正道) 경영, 원칙만 고집해 온 사장, 이제 그것만이 살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올해는 보너스까지 듬뿍 줄 겁니다. 이대로라면 떠난 가족들이 돌아올 날도 멀지 않겠지요.” 밤비 내리는 창문을 치는 그의 두 주먹에 힘이 실려 있었다. 대우의 힘이!
이런 회사가 망한다는 게 오히려 기적이다. 대우의 부활은 결코 기적이 아니었다. 대우야 외쳐라, 세계를 향해. 대우는 살아 있다고.
이시형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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