訓 : 아랫사람을 가르칠 줄 알아야 한다
評 : 한 일을 정확하게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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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1997년 발간한 에세이집에서는 중국의 검각(劍閣)이라는 험한 골짜기 앞에서 부하들이 망설이자 “내가 먼저 가겠다”며 담요 한 장을 두르고 절벽 아래로 굴렀다는 삼국지 후반부에 나오는 위나라 장군 등애(鄧艾)의 예를 들며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강조했다. 즉 스스로 행동하기보다는 주위의 평가를 의식하고 주위에서 원하는 대로 움직여서는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없다는 것.》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은 ‘천재 키우기’를 강조하기 이전부터도 계열사 사장들에게 ‘핵심 인재, 우수 인재를 데려오라’고 주문해 왔다. ‘인재 확보 실적을 사장단 평가의 주요 항목으로 반영하겠다’고도 강조했다.
그 같은 회장의 지시가 부담스러웠을까. 한 계열사 사장은 일본에 있는 삼성 현지 법인에 “최고의 기술자를 좀 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얘기를 들은 이 회장은 격노했다.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봤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
이 회장은 그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자기 장가가는데 색시를 남보고 구해 달라고 합니까. 왜 사장이 직접 나서서 구체적으로 필요한 분야의 최고 기술자를 구할 생각을 않습니까. 내가 우수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게 벌써 언제부텁니까. 10여년 전부터 수없이 강조해 왔는데, 아직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다는 겁니까….”
회장의 질책은 30여분간 계속됐다. 그 사장은 그 후 가장 먼저 ‘기술인력 맵(map)’을 만드는 등 인재 관리에 관한 한 선두 그룹에 속하는 경영인으로 성장했다.
동아일보와의 회견에서도 이 회장은 인재 확보야말로 경영자의 자질 중 으뜸가는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미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는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미래에 대비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입니다. 경영자라면 핵심 인재 확보를 자신이 챙겨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식해야 합니다. 경영자는 사실 본능적으로 사람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 해요. 필요하다면 삼고초려(三顧草廬), 아니 그 이상을 해서라도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회장이 그토록 강조했던 ‘인재’라는 개념이 최근 ‘천재’로 ‘진화’한 배경은 무엇일까.
“회장 취임 초기부터 지금까지 인재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은 변한 것이 없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천재, 이재(異才), 끼 있는 인재, 기술 인재 등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어요. 다만 처음에는 기업 경영 차원에서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최근에는 국가의 경쟁력도 결국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국가 차원의 인재 육성에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죠.”
―그렇다면 회장께서 생각하는 천재는 어떤 사람입니까.
“제가 얘기하는 천재는 공부만 잘하는, 100점만 맞는 사람은 아닙니다. 각자 끼가 하나씩은 있고 놀기도 잘하고 공부도 효율적으로 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매출액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2.7%를 차지하고 세금도 미국 총 납세액의 1.8%에 이릅니다. 그런 천재 3명만 나오면 우리 경제는 차원이 달라집니다. 그런 천재 세 사람을 찾겠다는 것이 목표입니다.”
―현재 삼성에는 천재급 인재가 몇 명이나 있다고 보십니까.
“아쉽게도 삼성 내에는 아직까지 천재급 인재는 없어요.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준(準) 천재급 인재는 여러 명 있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누구를 꼽으십니까.
“굳이 예를 들자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회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펠로(Fellow)로 선임된 사람들이 해당되겠죠. 또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사람을 ‘삼성 펠로’로 임명하는데 이들도 준 천재급이라 할 수 있지요. 전자의 황창규(黃昌奎·50) 사장은 256M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삼성이 반도체분야에서 세계 1위 기술력을 확보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전기전자공학회에서 펠로로 선임됐지요. 삼성종합기술원의 서양석(徐亮錫·50) 전무와 유인경(柳寅敬·49) 상무보도 세계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사실 황창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 진대제(陳大濟·정보통신부 장관) 전 전자사장을 비롯해 스타급 전문경영인 중에는 이 회장이 직접 발굴해 낸 인물이 적지 않다.
“회장께서 어느 날 이러이러한 사람이 있으니 찾아보라고 하시더군요. 회장은 끊임없이 반도체, 전자 관련 해외 저널과 서적을 읽고 여러 외국 전문가들과 교류합니다. 회장이 그런 과정을 통해 찾아낸 인재들인 것 같아요.”(삼성 구조조정본부 노인식 인력팀장)
실무진이 이렇게 추천된 인재들을 ‘모셔 오면’ 이 회장이 직접 만나 면밀히 살핀다. 진 전 사장의 경우 1년에도 몇 차례씩 불러 직접 보고를 받고 검증하면서 점점 더 중용했다.
이처럼 이 회장은 한두 사람의 추천이나 느낌에 의존하기보다는 종합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발탁 후보 인물들을 검토한 뒤 결정하는 스타일. 심지어 해당 후보의 취미, 특기, 요즘 주로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까지도 면밀히 파악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필요한 인재라고 결론내리면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는다.
삼성 관계자의 전언. “1960년대 말, 70년대 초 동양방송 이사 시절 어디에 우수한 기자가 있다고 하면 이 회장이 직접 나서서 끈질기게 설득하더군요. 고사하면 몇 번이고 계속 설득해요. 삼성전자 부회장 시절에는 ‘회사 다니기 불편하면 인재들의 마음이 떠난다’며 출퇴근 버스 시간표까지 다 외우더라고요.”
준 천재급 인재를 조심스레 거론하던 이 회장은 ‘천재는 길러진다’고 강조했다.
“많은 준 천재급 인재들이 천재급 자질을 갖췄지만 어려서부터 자질에 맞게끔 공부를 못했어요. 물론 문과 출신들도 해당되는 얘기입니다만 공부의 타이밍이 너무 늦어 머리가 굳어졌지요. 이들은 대개가 1940년대 후반이나 50년대 초반에 태어났는데 당시는 전문서적은 물론 상상력을 키워주는 소설이나 만화책도 없었어요. 놀이 종류가 딱지치기, 구슬놀이, 술래잡기 정도였지요. 머리가 말랑말랑할 때인 초중학교 시절에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었지요. 요즘 같다면 충분히 천재로 클 수도 있었을 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이 회장은 그러면서 “자랄 때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은 제 경험에서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저는 광복이되던 해인 네 살 때부터 경제를 알았다고 얘기를 합니다. 선대 회장(고 이병철 전 회장)께서 삼성상회를 운영하셔서 매일 주판을 놓고 물건을 사고팔고 맞추는 것을 보면서 자랐지요. 종일 비즈니스 환경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상거래에 관한 한 다른 사람이 초등학교 졸업해야 아는 것을 그때 알게 된 겁니다. 당시의 경험이 지금도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이 회장은 그러면서 우리의 교육 현실을 개탄했다.
“천재는 확률적으로 1만 명, 10만 명에 한 명 나올 정도의 사람이기에, 대한민국에서 잘 해야 400∼500명이죠. 그런데 이런 천재들은 보통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교육으로는 천재성을 오히려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빌 게이츠가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 중국 한국 등에서 태어났다면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있었겠습니까. 우리나라에도 그런 천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현재의 제도나 사회 인식에서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제도에 있다고 생각해요. 소수의 우수한 인재들을 모아 경쟁시켜 천재로 키우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러다간 준 천재급도 못 키우는 환경이 될까봐 걱정이에요. 일본 유럽 미국의 천재 교육시스템 중 어느 것이 좋은지 연구해서 우리 교육제도에 접목시키는 노력이 시급해요.”
―천재만 너무 강조하면 보통사람은 주눅이 들지 않을까요.
“천재성을 조기에 발굴해 육성하는 것이 시급한데 ‘위화감’ 때문에 시도 한번 해 보지 못해요. 미국을 보세요. 공립학교에서 대부분 교육을 담당하지만 상위 15%는 사립학교, 특수학교에서 그들에 맞게 교육하고 있어요. 국내에서는 사립학교 재단에 기금을 기부해 천재 육성센터를 만들려고 해도 걸림돌이 많은데 이런 것부터 개선해야 합니다. 하향 평준화를 더 이상 방치하면 국가의 장래도 어두워지지요.”
물론 삼성의 미래가 천재에게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회장은 현재 경영일선에서 뛰고 있는 테크노 CEO들, 그리고 그룹의 핵심 실세라 할 수 있는 전문 경영인들의 덕목을 예로 들면서 왜 이들이 중용될 수밖에 없었는지, 앞으로 중점을 둘 인재 육성 방향은 어떤 쪽인지를 설명했다.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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