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는 이때 김국길(金國吉) KK컨설팅 사장을 찾아와 무너진 영업망을 재구축할 영업담당 이삿감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김 사장이 추천한 인물이 현재의 하윤도(河允導·51) 사장이다. 당시 그는 피자헛 코리아 영업본부장으로 있으면서 80여개의 매장을 140여개로 확장해 펩시그룹 산하 전 세계 지사 중 최우수 업체로 키워낸 인물이었다.
그러나 나이키측은 스포츠 상품과 음식이라는 품목의 차이 때문에 난색을 표했다. 김 사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유통과 소매 분야는 같은 비즈니스 모델이며, 하 본부장은 그런 비즈니스의 본질에 정통할 뿐 아니라 대인관계 능력이 탁월하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신발과 음식이라는 제품이 다르다고 기용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난센스’라는 그의 주장에 힘입어 결국 하 본부장은 영업이사로 발탁됐다. 그러나 그는 3개월 만에 김 사장을 찾아와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젊고 역동적이고 국제적인 회사 이미지와 달리 당시 회사는 상호불신이 너무도 컸습니다. 본사에 기획안을 내도 못 믿겠다며 받아주질 않고, 판매점들도 믿어주질 않았죠. 도저히 힘들어 안 되겠다 싶어 재이직을 요구했습니다.”(하윤도 사장)
김 사장은 그때 “뭐든지 잘 돌아가는 곳이라면 왜 당신의 능력이 필요하겠는가”라며 “지금 이 순간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미래의 기회도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고 한다.
심기일전한 하 사장은 본사와 직원, 판매점들을 하나하나 설득해 가며 영업망을 정상 궤도로 올려 놓았고 2000년에는 사장으로 승진했다. 나이키 코리아는 지난해 월드컵대표팀 유니폼을 통한 홍보효과로 전년 대비 52%의 이익 신장을 기록해 나이키 본사로부터 ‘올해의 국가(Country of the Year)’로 뽑혔다.
또 올해 초에는 나이키 본사의 집중감사를 받고 나이키의 해외계열사로는 최초로 경영구조 1등급 판정을 받았다.
하 사장이 탁월한 대인관계로 문제를 정면돌파하는 형이라면 캐나다에 본사를 둔 통신장비업체 노텔 네트웍스 코리아의 정수진(鄭壽鎭·54) 사장은 빈틈없는 치밀함으로 차곡차곡 문제를 풀어가는 형이다. 김 사장은 정 사장이 외국계 재료공학 전문업체인 레이켐 코리아 사장을 맡고 있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정 사장이 레이켐 임원진을 뽑을 때 김 사장에게 의뢰했던 것. 김 사장은 그 과정에서 혀를 내둘렀다고 했다.
“내가 많은 CEO를 봤지만 정 사장처럼 치밀한 사람은 못 봤습니다. 정 사장은 어떤 프로젝트든지 가능한 모든 시뮬레이션 상황을 만들고 빈틈없이 시나리오를 짜는 스타일이죠.”
2000년 노텔 네트웍스 코리아가 한국인 CEO를 찾는다는 말에 김 사장은 고객이었던 정 사장을 추천했다. 역시 소재산업과 정보기술(IT) 업체로 분야는 달랐지만 정 사장은 취임 1년 만에 매출을 2.5배나 성장시켰다. 노텔은 현재 외국기업으로서는 유일하게 IMT-2000사업을 추진중인 KTF와 SKT 양쪽 모두의 통신장비 예비 업체로 선정돼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국내 무선통신업체들의 가장 큰 욕구가 국산화에 대한 열망임을 읽고 이를 최대한 반영하는 사업계획서를 짠 것이 주효했다는 정 사장의 설명이다.
김 사장은 두 사람의 공통점으로 강한 도전의식과 성취욕을 꼽았다. 자신의 능력을 펼치기 위해 이직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난관을 회피하기보다 돌파하기를 즐긴다는 것이다. 점잖아 보이는 정 사장은 자극이 필요할 때면 한겨울 설악산에 가거나 일본의 북알프스(3400m) 같은 험한 산행을 즐긴다고 한다.
“축구에서도 골 맛을 아는 선수가 골을 넣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과거에 성공을 경험한 CEO가 미래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법입니다. 최고의 CEO들은 겸손함 속에 바로 그런 긍지와 자부심에서 우러나는 성공의 향취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은은한 향취를 단숨에 읽어낼 수 있는 후각, 그것이야말로 14년간의 헤드헌터 경험을 통해 터득한 감각이라고 김 사장은 덧붙였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제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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