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약속이 나온 것은 2010년에는 세계적으로 5, 6개의 자동차회사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GT 5(Global Top 5) 가설’ 때문이다.
GT 5 가설이란 2010년까지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도요타 등 4강은 살아남을 확률이 매우 크지만 현대차를 포함한 나머지 10여개 업체는 남은 한두 자리를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내용. 이미 세계 자동차시장은 만성적인 생산과잉에 시달리고 있어 이 가설은 많은 자동차 전문가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독일의 BMW와 폴크스바겐, 일본의 혼다와 미쓰비시, 프랑스의 르노(닛산 및 르노삼성 포함)와 PSA(푸조 및 시트로앵), 이탈리아의 피아트….
남은 한두 자리를 놓고 현대차와 각축할 경쟁자들이다. 거명된 회사 이름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시라. 만만한 상대가 하나라도 있는가?
얼마 전 비즈니스위크가 세계 기업들의 브랜드가치를 조사한 일이 있다. 50위까지 집계한 결과 벤츠 도요타 혼다 폴크스바겐 등은 순위에 들었으나 현대차는 50위에 끼지 못했다. 아직 GT 5와는 거리가 먼 상황.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남는 돈이 많아 어디에 쓸지를 모르겠다고 하던 포드였지만 “앞으로 몇 년 안에 퇴출된다”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세계 자동차시장은 격변이 심하다.
도요타는 올해 결산 결과 3년 연속 최대이익 경신과 창사 후 최대이익이라는 두 가지 기록을 세웠다. 그런 도요타의 노조도 ‘시장상황 불투명’을 이유로 임금동결을 선언했다.
한 달 이상의 파업 끝에 현대자동차의 임단협이 5일 타결됐다. 파업이 끝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 그러나 타결 내용을 살펴보면 도요타와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장기적인 생존과 발전보다는 ‘당장 과실을 나눠 먹겠다’는 길로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타결이 가져올 역작용은 첫째, 기업의 경쟁력에 부담을 준다는 것. 이는 주가에 반영돼 6일 현대차 주가는 5.07% 떨어졌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현대차 공장의 10년 근무사원은 올해의 경우 수당까지 합쳐 5000만원이 넘는 임금을 받는다”고 말했다.
둘째, 국가경제에 주름살을 준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에서 현대차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매우 크다. 소비와 투자의 부진 속에 수출이 그나마 경제를 지탱하고 있고, 그 상당부분을 현대차가 떠맡고 있다. 현대차의 문제는 곧 나라경제의 문제다.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노조의 경영참여 확대다. 경영의 유연성과 위기대응 능력이 떨어질까봐 재계는 걱정이 태산이며 정부도 조정하려 하고 있다.
셋째, 현대차 이외의 다른 기업에 소속된 근로자에게도 부담을 준다. 교과서는 ‘노조의 이익은 노조가 없다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을 실업자 등 비조직 노동자의 희생 위에 취해진다’(맨큐의 경제학원론)고 가르치고 있다.
현대차의 타결 내용이 다른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임단협의 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과연 현대차에 ‘GT 5의 미래’가 가능할지 염려스럽다.
허승호 경제부차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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