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도 우리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지금처럼 가다가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도달은커녕 1만달러 수준을 지키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이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에 뛰어든 1960년대 이후 약 40년이 지났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크고 작은 사건이 많았다. 고통과 굴절의 기억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큰 흐름에서 우리 사회가 성숙, 발전한다는 믿음의 공통분모는 존재했다. 지금 그것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가 처해 있는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사회 전반적으로 ‘어두운 열정’에 휩싸여 방향타(方向舵)를 잘못 잡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국정(國政)의 핵심 주체인 정부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 착각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인간의 열정은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긍정과 연속성, 발전의 추구로 이어진다. 또 다른 하나는 부정과 단절, 파괴라는 특징을 지닌다. 독일 출신 유대계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어두운 열정’은 후자(後者)에 착안한 개념이다.
어두운 열정은 정치적 투쟁의 논리로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때로는 매력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사회의 풍요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아니, 더 냉정하게 말하면 그나마 이뤄놓은 사회적 성취를 무너뜨리고 퇴보를 불러올 개연성이 더 높다. 불확실성과 비예측성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경제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나친 기업 규제와 반(反)기업 정서, 잘못된 평등주의와 전투적 노동운동이 우리 경제를 발밑에서 갉아먹는다는 걱정은 단순히 ‘기업인의 엄살’만은 아니다. 정부도 때로 동의하면서 개선을 약속한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얼마 안 가 ‘개혁’이란 이름 아래 딴소리가 나온다. 글로벌 경쟁의 파고(波高)가 거센 지금 이러고도 경제가 잘 굴러갈 수 있다면 오히려 기적에 가깝다.
언론 문제에 대한 현 정부 핵심인사들의 집착과 피해의식도 그렇다.
우선 언론의 역할과 기능, 권력과 언론 관계에 대한 시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백보 양보해 ‘세상 읽기’의 차이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런 인식이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따져 보자.
엘리트 경제관료들은 한국 경제가 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정책을 세우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그런 그들이 정정보도나 반론보도 청구실적이 낮다는 압력을 받고 언론보도를 공격하고 흠집 내는 데 시간과 국민 세금(예산)을 투입하는 이 기막힌 현실은 분명히 정상이 아니다.
국가든 조직이든 정의(正義)와 평등으로 포장된 질투와 한풀이가 지배할 때 진정으로 의미 있는 개선과 발전은 어렵다. 어두운 열정의 포로로 계속 잡혀 있는 한 한국의 미래는 어둡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루어놓은 것을 지키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해 헌신하는 ‘밝은 열정’이 더 필요하다. 정부와 지도자는 특히 그렇다.
권순활 경제부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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