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영균/기업을 배척하면

  • 입력 2003년 8월 20일 18시 48분


얼마 전 서해 건너 중국 땅에서 전해 온 소식 한 토막.

‘중국 선양(瀋陽)시에서 영업하는 외국계 기업이 모두 6000여개인데 이 중 한국기업이 2300여개로 가장 많다. 올 상반기에 선양에 진출한 외국기업 중 한국기업이 최다로 134개나 된다.’

선양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어려움을 겪던 한국기업들이 중국에 가서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으로 떠나는 기업이 갈수록 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기업이 하나둘씩 떠나버린 텅 빈 공장이 많아졌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된 사람들만 고통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거래처가 사라진 납품업체나 은행 지점도 문을 닫아야 할 처지다.

기업하기 좋은 중국 땅이 불과 한두 시간 거리에서 손짓하고 있는데 기업들이 버틸 재간이 없다. 그렇다고 창업하는 기업이 많은 것도 아니고 투자에 나서는 곳도 거의 없다.

당장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지난 1년 새 일자리가 7만8000개나 줄어들었을 정도다. 새로 직장을 구하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려면 매년 그 정도의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할 판에 있는 자리마저 없어지는 것이 우울하지만 현실이다.

기업들의 탈출 러시는 기업인들이 국내에서 기업할 의욕을 잃었기 때문이다. 임금 수준이 국내의 10분의 1도 안된다는 것도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이지만 무엇보다도 기업과 기업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이들을 밖으로 내몰고 있다.

이른바 우리 사회의 반(反)기업 정서는 그 뿌리가 깊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기업들은 철퇴를 맞았다. 부정부패와 비리의 온상이었고, 탈세와 주가 조작의 대명사였다. 그래서 노조의 파업과 불법 행동은 정당한 요구로 당연시됐다. 이런 풍토에서 경제 회생은 이미 물 건너 간 얘기일 뿐이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그 해답도 역시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정부는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민간 기업인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기업과 기업인들은 철저하게 처벌하고 있다. 기업을 배척하는 반기업 정서가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기업 이미지를 보호하는 것이다.

중국이 이럴진대 하물며 다른 국가들은 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에서는 정부와 기업들이 어렸을 때부터 경제교육을 통해 기업관을 바로잡는다고 한다.

우리의 과거 정권들은 기업 이미지를 좋게 하기보다는 그 반대쪽에 가까웠다. 노무현(盧武鉉) 정권도 아직은 적극적으로 나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부만 쳐다볼 수도 없다. 기업과 기업인들이 스스로 나서야 할 때다.

모범 사례도 있다. 상속세와 주식배당세 폐지를 반대하고 공평과세를 주장하는 미국 부자들이 바로 모델이다. 좌파 성향의 진보적인 단체에서나 주장할 법한 얘기지만 이들은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미국 부자 랭킹 2위인 워런 버핏, 외환위기 때 나타났던 조지 소로스 등이 그들이다.

왜 기업에만 요구하느냐고 따질지 모르지만 마땅한 대안도 없다. 정부와 국민은 기업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보자. 기업이 솔선수범하는데도 정부와 국민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때는 차라리 어서 떠나라고 손을 흔들 수밖에 없다.

박영균 경제부장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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