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중은 30∼40% 정도. 그런 만큼 백화점들이 추석 대목에 벌이는 자존심 싸움은 대단하다. 정육의 품질뿐만 아니라 포장 용기와 방법 등을 비밀로 하고 추석 직전에 ‘깜짝 상품’을 내놓아 업계를 뒤흔들기 일쑤. 롯데백화점 황우연 과장과 협력회사인 스피드칩 백민호 사장, 현대백화점 정연성 과장, 신세계백화점 이종묵 부장과 직영농장인 대성목장 조세환 사장이 한자리에 모여 추석 정육선물세트 개발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정육세트가 추석 선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소비자의 기호가 달라지면서 정육 선물세트는 해마다 변하고 있다. 요즘은 포장 기술이 발달하면서 신선한 냉장육 비중이 커지고 있는 상황.
“한우는 고급 상품입니다. 수입 쇠고기와 차별화를 하기 위해서라도 냉장육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냉동육인 갈비도 고급 냉장육으로 만들까 고민하고 있죠. 이를 위해서는 냉장육을 한달 정도 보관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필수적이죠.”(신세계 이 부장)
식문화가 찜에서 구이로 바뀌고 손질을 하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는 정육 선물세트가 요즘 인기란다. 그래서 소포장 선물세트나 야채와 소스를 곁들인 샤브샤브 세트 등이 나오고 있다는 것.
앞으로는 외국처럼 친환경 쇠고기가 추석 선물세트로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유기농 사료를 먹이거나 성장 호르몬, 유전자조작(GM) 사료 등을 쓰지 않고 키운 소로 만든 고급 상품이 나온다는 것. 소득이 올라갈수록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식품과 과학의 만남’입니다. 농장에서 소를 키울 때 귀에 전자 칩을 붙여 성별, 나이, 병력, 품종, 사료, 도축(屠畜) 정보 등을 입력합니다. 도축장에도 이 기록이 넘어가고 제품 포장에는 고유 식별 번호가 적히게 되는 것이죠. 고객이 홈페이지에서 이 식별 번호를 이용해 입력 정보를 검색할 수 있습니다.”(스피드칩 백 사장)
아는 만큼 믿을 수 있다는 얘기다. 대성목장 조 사장은 ‘품질론’으로 맞섰다.
“‘품질과 위생’입니다. 강원도 고랭지 청정 목장에서 200m 암반수로 소를 키웁니다. 국가 품질 인증도 받았습니다. 고기 맛을 좌우하는 요인은 혈통이 60%, 사육 방법이 30%, 환경이 10%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15년의 목장 경험을 살려 가장 우수한 혈통을 골라 키우고 등급이 낮은 고기가 생산되면 문제 원인을 추적해 바로잡습니다.”
현대백화점 정 과장은 최고급 쇠고기라는 ‘화식(火食) 한우’ 카드를 빼들었다.
“소에게 전통방식처럼 불을 이용해 끓인 여물을 먹이는 게 비법입니다. 가격은 일반 한우에 비해 4% 정도 비싸지만 쇠고기의 씹는 맛, 지방 색깔 등이 월등하다고 자부합니다. 소비자 주문량이 많아 물량이 부족할 정도죠.”
백화점들은 정육 선물세트 포장을 놓고도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식은 아니다. 소비자의 기호를 철저히 고려한 과학적인 포장 기법을 도입한 것.
현대백화점 정 과장은 200g씩 소포장을 한 정육세트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음식점에서 1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을 따로 포장한 것. 진공 포장을 하기 때문에 최대 보름까지 냉장 보관해도 쇠고기가 변색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 먹다 남은 고기를 신선하게 보관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했다.
롯데백화점은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만든 퓨전 정육세트를 내놓았다. 고기를 야채와 함께 포장하고 17가지 퓨전 소스를 상품별로 포장했다. 꺼내서 바로 소스와 함께 먹으면 된다. 포장은 장식함으로 쓸 수 있는 최고급 나무함이나 재활용이 가능한 가방을 썼다.
신세계백화점의 아이디어도 돋보였다. 8시간까지 식품을 보관할 수 있는 ‘쿨러백’ 포장을 선보인 것. 신세계 로고도 최대한 작게 만들어 나들이용으로 재활용할 수 있게 했다. 버려지는 포장을 줄이기 위해 ‘쿨러백’을 가져오면 5000원권 정육 교환권을 준다. 다른 백화점 관계자들이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을 정도.
“갈비찜용 고기를 불갈비로 요리해 먹었다가 이가 상했다는 소비자 불만이 있었습니다. 요리법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올 추석에는 갈비 선물세트 구입 고객에게 요리법을 담은 CD를 함께 나눠주고 있습니다.”(롯데 황 과장)
백화점 바이어들은 ‘고기 맛이 좋다’거나 ‘서비스가 참 좋은 회사’라는 고객들의 말 한마디에 그 동안 쌓인 피로가 봄눈 녹듯 사라진다고 했다. “값을 깎아 달라”는 소비자 불만부터 여직원을 비서처럼 부리며 선물에 넣는 감사편지까지 대신 쓰게 하는 억센 고객을 상대해야 하지만 고객의 칭찬 한마디에 힘이 난다는 것. 추석 선물세트에는 보내는 사람의 정성을 빛내는 백화점의 고객 서비스 정신이 담겨 있다. 소비자 안전을 위해 보험에 가입하거나 금속 탐지기로 이물질을 찾고 품질연구소를 운영한다는 주장은 이제는 특별한 자랑거리도 아니다.
“소는 한국 토종이 살아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름도 ‘한우(韓牛)’라고 합니다.”(대성목장 조 사장)
화제가 추석 정육선물세트에서 한우로 넘어갔다. 국내에서 키운 외국 품종의 소는 국내산으로 표기되기 때문에 한우 쇠고기와 다르다는 충고와 값싼 외국 수입 쇠고기에 밀려 한우 농가가 줄고 있다는 걱정이 흘러나왔다.올 추석 명절에는 집에서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맛이 일품인 한우 파티를 열어 보는 건 어떨까.
박 용기자 parky@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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