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지점장은 최근 ‘심상사성(心想事成), 마음만 먹으면 된다’(장승 간)라는 제목으로 금강경의 해설서를 펴낸 주인공. 최첨단 금융 상품과 부동산, 주식투자, 세무관리 등을 통해 고객이 맡긴 돈을 불려주는 일을 하는 그가 ‘공(空)’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금강경의 해설서를 펴냈다는 점이 언뜻 연결되지 않았다. 번뇌와 욕심을 끊으라는 불교의 가르침과 남의 욕망을 무한히 확장시켜야 하는 그의 프로페셔널리즘은 과연 어느 지점에서 만났을까.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직후 업무가 자산관리 분야로 바뀌면서 엄청난 책임감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자산관리 업무는 손해가 허용되지 않는 ‘승률 9할의 투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의욕은 높지, 일은 안 풀리지, 그러다 보니 무리수를 두게 되고 회사에서 감급의 징계도 당했죠.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던 건 내가 남(고객)에게 복을 쌓는 일은 못할망정 손해를 주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었습니다.”
급변하는 금융환경에서 우 지점장의 고민은 대다수 증권맨들의 고민이기도 했다. IMF 관리체제 직후 고금리 추락(98년), 대우사태(99년), 벤처 추락(2000년), 9·11테러(2001년), 월드컵과 대통령 선거(2002년)에 얼마 전 SK쇼크에 이르기까지 예측 불가능한 금융 환경은 투자자는 물론 증권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을 절망과 자괴감에 빠뜨렸던 것이 사실.
그때 우 지점장은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느라 금강경 사경(寫經)을 시작했다. 10년 전 한 스님으로부터 건네받은 경전이었는데 노트를 펴들고 한자 한자 열심히 베끼다 보니 마음도 가라앉고 세상 보는 눈도 달라지더라는 것이다.
“직업상 사람들을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많았죠. 사업가 재벌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맨 음식점주인 신발가게사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보니 어떤 공통분모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금강경의 가르침과 다를 바 없다는 깨달음이 들었어요.”
그 공통분모란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하고 마음에 열을 내야(熱心)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목표’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해야 할 종착점이라기보다 마치 도를 닦듯 끊임없는 내적 성찰을 통해 가야 할 ‘자기만의 길’이다. 그래야 대상과 주변 상황을 ‘있는 그대로(여여·如如)’ 보는 여유가 생겨 일에서도 재미와 집중력이 붙는데 이것이 금강경의 구도 과정과 흡사하다는 것.
“예를 들어 금강경의 명언 중에 ‘어디에도 매임이 없이 마음을 쓰라(應無所住 而生其心)’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 제가 본 부자들은 세상을 선악의 관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고 예측하고 대응하는 능력이 탁월한, 이른바 ‘눈이 밝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이어 “이런 분들은 단지 일시적인 성공이나 부(富) 자체에 집착하거나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중간에 위기나 유혹을 만나도 이겨낸다”며 “이는 작은 법(小法)에 만족하는 사람은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해 자기 욕심에 빠져 결국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금강경 가르침과 상통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펴낸 책은 돈 버는 방법이 보인다는 식의 처세술이나 투자 지침이 아니라 금강경 해설서다. 자기 체험보다는 경전 해석이 주가 되어 감동이 덜한 아쉬움도 든다. 그러나 ‘하는 일이 착해야 착한 것이지 사람 좋다고 착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게으름과 태만을 무소유라고 속이지 말라’, ‘지위에 끌려 다니지 말라. 즐길 수 없다면 성공할 수 없다’ 등의 대목은 체험에서 우러나온 솔직함과 창의성이 배어 있어 눈길을 끈다.
“경전 해석에 탁월한 스님이나 학자가 많은 마당에 제가 감히 도전한 것은, 금강경을 통해 내 인생에 대해 참회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왜 나는 안 될까’ 하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가 금강경을 통해 반성하면서 그런 참회와 겸허의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보니 일이 즐거워졌죠.”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을 모두 선생님으로 보니 미워하는 사람도, 화를 낼 일도 없어졌고 ‘머리맡에 올라앉은 불덩이’를 식힐 수 있더라고 그는 고백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좋아졌고 세상 일이 재미있어 직장 일도 신이 나더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는 성공한 사람이나 부자에 대해 열등감이나 증오심이 많은데 사실은 한순간의 투기가 아니라 수행자와 같은 치열한 과정을 통해 부를 이루고 유지하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면서 “금강경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면서 내가 일하는 증권시장도 버는 자와 잃는 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제로섬이 아니라 플러스섬 시장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우승택씨는 ▼
1959년 충남 아산 출생
1977년 서울 경복고 졸
1985년 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 졸
1985년 캐세이패시픽 항공사 입사 이후 유화증권, 삼성증권 법인부를 거쳐 97년 12월부터 삼성증권 양재지점장, Fn Honors 청담지점장, 서초지점장 등으로 일했으며 2002년 10월부터 Fn Honors 종로타워 지점장으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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