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타깃으로 생산된 ‘XC90'
스웨덴 남서부 고텐버그시 외곽에 위치한 볼보자동차 토르슬란다 공장.
‘XC90’은 이곳에서 생산에서부터 여성의 손길을 받고 있었다. 여느 자동차 공장과는 달리 전체 직원 1만여명 가운데 25%에 이르는 여성들은 민소매에 금발머리를 동여맨 채 나사를 조이고 합판을 이었다. 1981년부터 이곳에서 근무해 온 셀레스테 레이 바티스타 매니저(39)는 “공장에선 ‘여성의 일’이나 ‘남성의 일’은 없다. 그저 차를 만드는 ‘일’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공장에서 만난 ‘XC90’의 가장 큰 특징은 두 번째 열의 좌석이 운전석 바로 뒤까지 당겨진다는 것이다. 운전석에 앉아서도 바로 뒷좌석에 있는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돌볼 수 있도록 한 것.
여성들이 흔히 어린 자녀를 동반해 운전한다는 점을 착안했다. 바티스타 매니저는 “여성에겐 정말 중요한 기능이지만 남성들은 전혀 생각지 못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다른 SUV에 비해 쉽게 내리고 타기 쉬운 것도 장점. 한스 위크맨 차량개발프로젝트팀장은 “치마를 자주 입는 여성들이 차에 오르내리기 위해 치마를 무릎 위로 들어올려야 하는 불편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또 장바구니를 쉽게 올리고 내릴 수 있도록 트렁크의 높이를 낮추는 등 작은 소품에까지 여성의 요구를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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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여성의 영향력
‘XC90’이 여성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반영한 것은 철저한 사전조사 덕분이었다.
날로 급팽창하는 SUV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하는 볼보차는 우선 시장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위크맨 팀장은 “놀랍게도 미국의 SUV시장을 조사한 결과 여성 운전자가 8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우선 32∼54세의 미국 여성 24명을 선발해 심층면접 집단을 꾸렸고 6개월 동안 이들의 요구를 집중적으로 탐색 반영했다. ‘XC90’의 가장 큰 장점인 전복(rollover)의 위험을 크게 낮춘 것도 이들의 강력한 요구 때문. 이후 XC90은 세계 각국의 평가기관으로부터 전복의 위험이 가장 낮은 차로 선정되고 있다.
사실 미국 시장에서 여성의 구매결정력이 남성을 앞지르는 분야는 SUV뿐이 아니다. 2001년 미국 소비자 조사기관인 JD파워에 따르면 신차 구매의 65%, 모든 차 구매의 50%를 여성이 결정한다.
무엇보다 여성은 자동차를 선택하는 기준도 남성과는 딴판이다.
볼보의 여성 임원인 레나 올빙 수석 부사장은 “남성은 스피드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여성들은 얼마나 안전한지, 얼마나 나의 필요에 맞는지, 얼마나 믿을 만한지를 따진다”며 “여성 고객을 잡으려면 여성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을 위한 차는 여성이 만든다
볼보는 20명의 내부 여성 직원으로 꾸려진 ‘여성 고객을 위한 참조인 그룹(FCRG)’도 운영하고 있다. 자동차가 처음 개발될 때부터 마케팅 재무 등 엔지니어가 아닌 여성 직원들이 여성으로서의 요구사항을 적극 제시해 제작과정에 반영하는 것.
1989년부터 FCRG의 구성원으로 활동해온 환경개발부 헬레나 베르그스톰 과장은 “치마 때문에 무릎을 모으고 운전해야 하는 점을 감안해 운전대 밑의 공간을 최대한으로 넓혔다”며 “페달도 굽이 높은 신발을 자주 신는 데 맞춰 제작됐다”고 말했다.
볼보는 지난해 아예 여성 전용차를 만들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기계공학박사 등 5명의 여성 매니저에게 40명으로 이뤄진 TF팀을 맡긴 것.
타티아나 뷰토비츠크 팀장은 “여성 전용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볼보 내 모든 여성들과 많은 남성 동료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며 “양산되지는 않더라도 고안된 모든 사양은 대부분의 볼보차에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구의 절반에 불과한 여성만을 위해 별도의 전용차를 만드는 게 지나친 위험 부담은 아닐까.
볼보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성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다면 남성의 기대는 넘어설 수 있다.”
고텐버그(스웨덴)=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볼보 엠블럼은…▼
볼보는 라틴어로 ‘나는 구른다’는 뜻. 볼보의 심벌은 끊임없이 회전하는 베어링
을 형상화한 화살표 문양과 함께 ‘VOLVO’라는 글자가새겨져 있다.
▼볼보의 여성 안전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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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운전자들은 남성에 비해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볼보자동차 ‘교통사고 연구팀’은 약 3만건의 교통사고 사례를 수집해 분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임신부와 어린이의 안전운전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다음은 볼보의 안전운전 제안.
▽어린이의 안전띠 착용법=9개월된 영아의 머리 무게는 전체 체중의 25%로 성인(6%)의 4배나 된다. 때문에 교통사고가 나면 목뼈가 부러지는 등 치명상을 입기 쉽다.
이를 막으려면 베이비시트를 제대로 착용해야 한다. 시트는 운전 방향과 반대가 되도록 장착한 뒤 앉힌다. 생후 9개월까지는 유아용시트에 앉혀야 안전하다. 아기 머리가 유아용 시트 윗부분에 닿으면 어린이용 시트로 바꾼다. 10세가 되면 성인용 안전띠만 착용해도 사고로 사망할 가능성이 60% 낮아진다. 주의할 것은 안전띠의 아랫선이 배를 지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허벅지 방향으로 띠를 내려 골반 뼈를 지나도록 맨다.
▽임신부의 안전벨트=미국의 의학전문지인 자마(JAMA)는 “미국 내 운전사고로 인한 태아의 사망률은 1%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조사결과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임신부 중 52%가 임신 중 안전띠를 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부는 띠가 배 위로 가지 않도록 허벅지 쪽으로 내려 맨다. 위쪽 띠는 가슴의 한가운데를 지나도록 매고, 될 수 있는 한 운전석을 뒤로 밀어 운전대에서 배가 멀어지도록 한다. 띠가 몸에 꽉 붙는 것이 좋기 때문에 겨울에는 웃옷을 벗고 맨다. 차에서 내리고 탈 때는 운전석을 뒤로 최대한 밀고 운전석 왼쪽의 손잡이를 잡고 일어서는 것이 안전하다.
고텐버그(스웨덴)=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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