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서는 분배와 관련된 통계자료가 미비하거나 신빙성이 없어 전문가들도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면서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소득 분배의 균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보면 외환위기 직후에 소득계층별 격차가 확대됐다가 그 뒤로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다른 분배지표를 종합해 봐도 지난 몇 년 동안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룰 자체보다는 집행과정에 문제 ▼
그러나 서민 대중에게 통계 지표는 별 의미가 없다. 그들은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있으며, 그 원인은 잘못된 정부정책과 시장개방,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유층에 유리한 사회구조에 있다고 믿고 있다.
공평한 분배는 사회 안정의 근간이며 기본권에 준하는 인간의 욕구이기 때문에 이념의 차이를 떠나 어느 정부이건 해결해야 할 기본과제로 돼 있다.
그러나 단기간에 저소득층의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수단이나 처방은 없다. 저소득층이 이러한 정책의 한계를 이해하기도 어려울 것이며 몇 년씩이고 기다려줄 참을성이 있을 리도 없다.
결국 집권세력은 대중인기에 영합하면서 단기적으로 분배에 관한 불만을 비켜나가는 전략으로 사회개혁을 선택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진보성향이 짙은 정부에서 두드러진다.
노무현 정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득권에 집착하는 수구세력의 저항이 분배 개선을 가로막는 원인이라고 보는 것 같다. 따라서 기득권층에 유리하게 돼 있는 현재의 게임의 룰을 뜯어고쳐 소외 계층에 대한 차별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분배 정의는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견 설득력 있는 견해일 수 있지만, 기회의 공평성을 보장하기 위해 고쳐야 할 룰을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일 룰 바꾸기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를 찾지 못하면 정부의 정책은 일관성을 잃고 계층간 갈등을 조장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정작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의 개발은 뒷전으로 미뤄지게 된다.
기득권층에는 재벌이나 특권세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견기업인, 전문직 종사자, 공무원과 일반 시민 등 다양한 계층과 부문의 사람들이 포함된다. 기득권층의 대다수는 열심히 일하면서 법을 지키고, 세금도 제대로 내고, 개혁에도 참여해 온 사람들이다. 기득권이 정당한 절차를 밟아 차지한 권리라면 분배 불공평의 책임을 전부 ‘기득권적인 룰’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시각과 이념에 따라서는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게임의 룰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룰이 잘못된 것보다는 룰을 지키지 않거나 무시하는 관행이 더 큰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권력의 핵심에 있는 세력이 먼저 룰을 무시하는 현실부터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필요하다면 민주적 절차에 따라 룰을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룰 바꾸기가 쉽지도 않고 때로는 바람직하지도 않다면, 좀 더 현실적인 전략은 합리적이며 효과적인 정책방안을 찾는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와 외국의 오랜 경험에 따르면, 초중고교 교육에 대한 투자,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건설, 의료 서비스의 확대, 사회안전망의 확충, 물가와 고용의 안정 그리고 경제성장이 분배개선에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기적 충격처방 약효 오래 못가 ▼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이미 시행 중인 것으로 새로울 것이 없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그 때문에 정부는 보다 충격적인 처방을 찾으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시장을 열어놓고 사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고소득층에 대한 중과세나 과다한 복지지출, 다른 물리적인 분배정책은 곧바로 시장의 감시망에 포착되어 오래갈 수 없다. 이른바 참여정부의 정책팀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룰 바꾸기에 집착하다 보면 정부의 정책은 공회전을 하다가 어느 날 멈추게 된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경험한 것도 아닌데 정책팀이 왜 과거의 잘못된 전철을 되풀이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박영철 고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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