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자유무역 손잡기 바쁜데…한국 'FTA 외톨이'

  • 입력 2003년 9월 21일 17시 59분


한국이 세계 무역의 새 흐름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무대에서 고립될 위기에 처했다.

21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한국의 첫 FTA 체결 상대인 칠레는 이달 중으로 예정된 한-칠레 FTA 법안의 상원 표결을 10월로 연기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 국회가 한-칠레 FTA 비준을 표류시키고 있어 칠레가 반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첫 FTA 체결 지연으로 △한국 신뢰도 추락 △한국 수출경쟁력 약화 △다른 나라와의 FTA 체결 애로 등의 문제점이 나타날 전망이다.

▽FTA, 세계 무역의 흐름=체결 당사국간 무(無)관세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FTA는 최근 체결 건수가 급증하며 세계 무역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시작된 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 직전인 1994년까지 47년 동안 FTA(관세동맹 포함) 체결 건수는 125건이었다. 이어 95년부터 올해까지 9년간 130건으로 급증했고 체결 절차를 밟고 있는 FTA도 70건을 웃돌고 있다.

14일 멕시코 칸쿤에서 막을 내린 제5차 WTO각료회의가 결렬되자 세계 각국은 다자(多者)간 협상인 도하개발어젠다(DDA) 대신 양자(兩者)간 협정인 FTA 체결을 서두르고 있다.

2002년 11월 아시아 첫 FTA인 일본-싱가포르 FTA가 발효된 데 이어 중국 인도 일본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등이 FTA를 체결하거나 체결에 관한 기본 틀에 합의했다.

무역연구소는 21일 ‘아시아 주요국의 FTA 추진 동향’ 보고서에서 진행중인 FTA가 발효되면 아세안의 FTA 수출 비중이 22.8%에서 31.3%로, 태국은 20.9%에서 29.2%로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 신뢰도 추락=김창규 산업자원부 국제협력기획단장은 “한-칠레 FTA 지연으로 FTA 체결 대상국으로서 한국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최낙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멕시코가 한국이 제안한 한-멕시코 FTA 체결을 거절한 데는 한국의 신뢰 추락 등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영준 외교부 다자통상협력과 외무관도 “국내 이해관계에 발목이 잡혀 한-칠레는 물론 일본 싱가포르 멕시코 등과의 FTA 체결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안드레스 살디바르 칠레 상원의장은 최근 칠레 일간지 ‘라 에스트라테히아’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국회가 한-칠레 FTA 법안 처리에 성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수출경쟁력 약화=국제 FTA 체결 무대에서 한국의 고립은 수출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FTA를 체결한 나라는 상대국에 수출할 때 무관세 등 특혜를 받는다. 이 때문에 한국 기업은 상대적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칠레에서 한국 자동차의 시장 점유율은 작년 1∼4월 20.2%에 달했으나 올해 같은 기간 13.8%로 추락했다. 휴대전화 수출도 비슷하다.

이는 칠레가 유럽연합(EU)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브라질 우루과이 등과 FTA를 발효시키면서 이들 국가에서 자동차 휴대전화 등을 대거 수입한 까닭이다.

외교부는 2002년 세계 무역에서 FTA 체결 국가간 무역 비중은 43%였으나 2005년 55%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정재화 무역연구소 FTA팀장은 “FTA 국가간 무역이 늘어날수록 한국은 수출 시장과 경쟁력을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홍찬선기자 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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