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락 쇼크]수출 휘청…2%대 성장도 위협

  • 입력 2003년 9월 22일 18시 34분


지난 주말 열린 서방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 따른 엔-달러 환율 폭락으로 22일 원-달러 환율이 34개월 만에 최저치인 달러당 1151.20원을 기록했다.  -이훈구기자
지난 주말 열린 서방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 따른 엔-달러 환율 폭락으로 22일 원-달러 환율이 34개월 만에 최저치인 달러당 1151.20원을 기록했다. -이훈구기자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경제가 설상가상의 어려움에 빠져들고 있다.

정책실패와 노사분규, 태풍 ‘매미’ 등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환율 폭풍’까지 몰아치면서 하반기 경기 회복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특히 이번 환율 하락은 한국 경제의 ‘체력’과 상관없이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인 만큼 ‘경기 침체 속 원화 강세’라는 악성(惡性)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펀더멘털과 반대로 가는 환율=통상 경기가 안 좋으면 그 나라 돈 가치는 떨어지기 마련이다(원-달러 환율 상승). 이를 통해 수출이 늘고 수입이 줄어 국제수지가 균형에 이르고 경기가 상승하는 선(善)순환 구조를 타게 된다.

그러나 이번 환율 하락은 경제 체력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2·4분기(4∼6월) 경제성장률이 1.9%에 그쳤는데도 외부 요인으로 원화가치가 올랐다. 이 경우 수출 감소, 수입 증가로 이어져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된다.

실제 원화 환율이 10% 떨어지면 국내 제조업의 매출액은 평균 5.1% 줄고 경상이익률도 3.0%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나마 환율 하락에 힘입어 수입 중에서도 특히 생산재 수입이 늘면 다행이다. 투자 확대로 이어져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확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기업들의 설비투자 부진이 환율보다는 심리적 요인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 확대를 기대하긴 어렵다.

결국 이번 환율 하락은 수출 위축→기업 수익 악화→투자·소비·고용 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만 높여준 셈이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申민榮) 연구위원은 “경제 여건을 반영하지 못하는 환율 하락은 수출 부진과 경기 악화를 몰고 온다”고 설명했다.

▽성장률 더 떨어질 듯=최근 민간연구소가 내놓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대 후반. 하지만 이는 태풍 ‘매미’만 감안한 것으로 수출이 8월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철(曺東徹) 거시경제팀장은 “장기적으로는 원화가치 강세가 내수를 촉진할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며 “하지만 환율 하락은 단기적으로 수출 감소를 불러와 성장률에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삼성증권도 연말 원-달러 환율 예측치를 종전의 달러당 1180원에서 1100원으로 낮추고 성장률 전망도 3.2%에서 2.8%로 낮췄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丁文建) 전무는 “이미 섬유산업 등 중국과 경쟁하는 산업은 1200원대 이하일 때 채산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환율 하락이 이어지면 대부분의 수출업체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 부양책 가능하나=수출 침체로 성장률이 더 하락할 경우 장기적인 성장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추가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당장 정부가 내놓을 ‘카드’는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미 1차 추가경정예산으로 4조2000억원을 편성한 데다 태풍 ‘매미’의 피해복구비용으로 2차 추경 3조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대규모 적자 재정을 감수하지 않는 한 추가 부양책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재원(財源)은 이미 바닥난 상태다.

연세대 이두원(李斗遠·경제학) 교수는 “정부가 급하게 외환시장에 개입하기보다는 이 기회에 기업과 정부가 내수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홍찬선기자 hcs@donga.com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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