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시 봉황면 권호상씨(56)는 농작물재해보험 제도가 첫 도입된 2001년 1500평의 배 과수원에 대해 보험에 가입했으나 지난해 해지했다. 권씨는 “농작물 피해율이 낮으면 보상을 받지 못하는데다 일반 보험과 달리 가입 기간에 따른 할인율도 없다”고 말했다.
3년째 보험에 들어 온 인근 금천면 김재운씨(52)도 이 제도가 보완되지 않으면 내년부터 가입하지 않을 생각이다.
▽농작물 재해보험이란=농작물 재해보험법에 따라 2001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대상 농작물이 현재는 사과 배 단감 포도 복숭아 감귤 등 6개로 제한되어 있다. 보험 상품은 본인 부담률에 따라 15, 20, 25, 30%형 등 4가지. 전체 가입 농가의 80%가량이 20%형에 가입해 있다. 보험금은 본인 부담률 이상의 피해를 보았을 경우 지급되고 지역과 작물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예상 소득의 50∼80% 정도 보전된다.
▽왜 외면하나=올해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한 농가는 전국적으로 1만6522가구로 지난해보다 2098가구가 줄었다. 이는 가입 자격이 주어진 농가의 14%에 불과한 수준이다.
당초 이 보험에 가입할 의사를 밝혔던 보험 대상 4만여 농가는 비싼 보험료를 이유로 계약을 포기했다. 우리나라 과수농가의 소득 대비 보험료 부담률은 1.44%로 일본의 0.37%에 비해 4배가량 높다.
정부는 순 보험료의 50%, 보험 운영비의 80% 등 전체 보험료의 63.5%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지원금이 바닥나면 그 이후에 가입한 농민은 보험료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다.
농협 경남지역본부 재해보험담당 양원석 과장은 “정부 지원금이 지난해 85억7000만원에서 올해 205억원으로 늘어나기는 했으나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태풍으로 고추밭 3500평의 절반이 유실된 경북 영양군 영양읍 조재기씨(47)는 “농작물재해보험에 들고 싶지만 고추가 대상작물이 아니어서 들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설마’ 하는 농민들=보험 가입 대상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도 상당수는 ‘설마 내가 피해를 당하랴’는 심정으로 농작물 일부에 대해서만 보험에 가입하거나 아예 보험 가입을 꺼려 보험재정이 고갈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보험료 납입시기가 3, 4월로 영농자금 상환시기와 맞물려 있는 것도 농민이 보험가입을 꺼리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미흡한 지원=미국 캐나다 일본 등의 국가는 농작물 보험의 운영비를 모두 지원할 뿐 아니라 국가가 정책보험으로 운영하고 있다.
농협 관계자는 “운영비를 전액 지원하면 농가 부담은 현재 전체 보험부담액의 36.5%에서 27.5%로 내려간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사과 3000평 기준으로 농민부담 보험료는 110만9000원에서 83만6000원으로 줄어든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재해보험 활성화에 중요하다. 경북도는 올해 6559농가에 6억8900만원을 지원했고 전남 광양시와 전북 전주시 등도 보험료를 지원해 가입 농가수를 늘렸다.
농협 경남지역본부 김형열 조합금융팀장은 “농민 부담을 덜어 주면 보험 가입이 늘어나고 자연히 보험료 인하로 이어져 이 제도의 정착을 앞당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태갑(全太甲) 전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경쟁력이 낮은 국내 농가의 현실을 감안해 당분간 정부의 보험 부담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재해보험 대상 작물의 확대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영양=최성진기자 choi@donga.com
진주=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나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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