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임규진/장사꾼 은행장과 관치경제

  • 입력 2003년 9월 28일 1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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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키토(모기) 같은 그전 매니저… 이런 계산기 같은 불쌍 한심한 인간들이여… 음악을 돈으로 생각하는 장사꾼….”

인기 가요그룹 DJ DOC가 최근 내놓은 앨범에 나온 가사다. 장사꾼은 모든 것을 돈으로 보는 ‘피 빨아먹는 모기’로 표현돼 있다.

18세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은 장안 갑부 변씨에게 빌린 10만금으로 장사에 나서 큰돈을 번다. 허생의 상술은 매점매석에 의한 가격조작. 요즘 같으면 구속되기 딱 알맞은 불공정거래행위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장사꾼은 사기꾼 비슷한 부정적 이미지로 통하는 것 같다.

금융계 최고의 ‘장사꾼’으로 불려온 김정태(金正泰) 행장이 최근 들어 몇 가지 사건으로 위기에 몰리고 있다. 김 행장은 스톡옵션 행사과정의 부도덕성과 신용카드 부문 부실경영으로 감독당국의 ‘주의적 경고’를 받은 데다 국민은행은 내부정보를 활용해 보유중인 주식을 거래한 혐의로 검찰고발조치까지 당하게 됐다.

장사꾼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장사꾼은 상업 활동, 황금욕(黃金慾·greed)의 추구, 인적 자본의 축적 등을 하는 사람들이다.

일단 김 행장은 황금욕을 추구한 돈 장사꾼이 맞다. 다만 그는 과거의 은행장들과 달리 ‘정부 관료의 지시’보다 ‘시장의 요구’를 더 중시했다. 그 결과 공공기관에 다름없던 시중은행은 돈 장사하는 현대적 기업으로 바뀌고 있다. 김 행장은 한 단체로부터 은행장 중 가장 신뢰받는 최고경영자(CEO)로 뽑히기도 했다.

김 행장의 장사꾼 기질이 과(過) 못지않게 공(功)도 많았다는 얘기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1766년)을 내놓은 이래 현재까지 ‘기업이 장사꾼답게 활동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과 ‘정부규제를 통해 장사꾼의 탐욕을 억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팽팽히 맞서왔다.

후자(後者)의 입장에 가까운 정부 관료들은 정부규제가 없으면 불량식품, 증권사기, 부실공사가 양산될 것으로 굳게 믿어왔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정부규제의 해악에 질려 장사꾼에게 보다 많은 자유를 주는 쪽으로 흘러왔다.

5년 이상 참아왔던 정부 관료들은 이제 장사꾼 행장의 부도덕성을 들어 규제 강화에 나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전 은행장들의 행태를 생각하면 ‘장사꾼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줘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시장의 요구를 무시하고 관치(官治)에 순응했던 은행장들의 고결한(?) 행동으로 인해 국민들은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혈세(血稅) 100조원 이상을 바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말한 ‘진정한 장사꾼’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사회는 기업이 장사꾼답게 활동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유를 줄 때 공익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업이 장사꾼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반드시 좋은 평판을 쌓아야 하고 좋은 평판은 양심적인 기업 활동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고결함에 대한 공격’(Assault on Integrity)>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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