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연구소가 고인의 20주기를 맞아 다음달 초 발간하는 ‘80년대 경제개혁과 김재익 수석-20주기 추모 기념집’도 이런 움직임의 하나다.
특히 이런 움직임은 현재 우리 경제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성장률 하락과 고용불안, 유가상승 등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비슷한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한 교훈을 얻으려는 갈망이 적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남덕우(南悳祐) 전 국무총리, 로렌스 크라우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분교(UCSD) 교수, 강경식(姜慶植) 전 경제부총리, 고인의 부인인 이순자(李淳子) 전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등 9명이 이 책의 공동 저자다.
이들은 특히 80년대 초 어려움을 겪고 있던 우리 경제를 다시 내실 있는 성장으로 유도한 고인의 리더십이 지금 경제관료들에게도 생생한 교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 전 총리는 머리말을 통해 “정치는 싸움판이고, 노조는 타협보다 투쟁을 내세우며, 기업은 실의에 빠져 있으며, 경제는 곤두박질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뚜렷한 리더십까지 없으니 공무원들은 방황을 거듭하고 있는 것 같다. 김재익 같은 공직자가 지금 청와대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아쉬워했다.
김재익의 경제 철학은 ‘안정, 자율, 개방’으로 요약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개발독재의 유산이 짙게 깔려 있던 당시에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그는 전두환(全斗煥) 당시 대통령에게 ‘경제는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정부가 힘으로 누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경제 원리를 가르쳤다. 또 개인이든 국가든 흑자를 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고통을 참고 나가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또 대외적 압력에 밀려 시장을 열기 전에 능동적으로 시장 개방에 준비하자는 것이나 전자 및 정보통신산업을 ‘미래 산업’으로 본 것도 혜안으로 꼽힌다.
관(官) 주도 경제 체제가 대세였던 그 당시 정부 안팎에서는 ‘김재익 철학’에 대한 반발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는 말을 들을 만큼 전 전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정책기조를 굽히지 않았고 사후(死後)에 결실을 보았다.
정통성이 취약한 군사정권에서 일했다는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면서 선구자적 길을 걸어간 고인의 공로는 과오를 훨씬 능가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기념집 출간을 기념하고 김재익을 추모하는 모임은 다음달 6일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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