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 나의 인생]<3>준비된 이혼이랴아 홀로 선다

  • 입력 2003년 10월 1일 17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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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제력만 있었더라면…. 당당하게 혼자 설 능력만 있다면….”

전업주부 김모씨(42)는 이혼소송을 낸 남편과 3년째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남편이 집을 나가 ‘딴살림’을 차린 지 5년째. 부부간 애정은 메말랐지만 김씨는 이혼해 줄 수 없다고 버텼다. 남편은 1심에서 패소하자 항소 등을 통해 끈질기게 이혼을 조르고 있다.

김씨가 ‘껍데기뿐인 결혼생활’에 매달리는 이유는 이혼 이후의 경제생활이 막막하기 때문. 그는 재산관리를 회사 사장인 남편에게 맡긴 채 매달 풍족한 생활비만 받아 써 왔다. 이혼 후 나눠 가질 수 있는 재산이 얼마인지조차 몰랐다. 남편은 그 사이 재산분할을 피하기 위해 부동산 등을 은닉시키고 회사 매출규모도 10분의 1로 줄여서 신고해 버렸다. 경제적 지식이나 자립 능력을 쌓지 않은 것을 후회해도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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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준비 없는 이혼의 덫=한국 여성에게 이혼은 더 이상 ‘보기 드문 불행’이 아니다.

1990년만 해도 4만5694건에 그쳤던 이혼 건수는 2000년 11만9982건, 2001년 13만5014건에 이어 작년에는 14만5324건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매년 조이혼율(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도 90년 1.1건에서 작년 3건까지 증가했다.

여성들이 이혼 과정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결국 돈 문제. 김씨처럼 남편에게 재산 관리를 맡겼던 여성들은 이혼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기 쉽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최근 이혼소송을 낸 최모씨(49)는 결혼 당시 자기 소유였던 재산조차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최씨는 95년 재혼 직후 자신의 아파트를 판 돈 3억원의 운용을 남편에게 맡겼다. 남편은 주식, 선물투자 등을 통해 이 돈을 불린 뒤 부동산에 투자했다. 최씨는 이혼 과정에서야 부동산이 모두 남편의 형제들 명의로 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뒤늦게 항의했지만 구체적인 재산증식 내용을 몰라 정확한 자신의 몫을 주장할 수 없었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면 이혼에 대한 공포감이 커져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게다가 자녀의 양육까지 책임질 경우 경제적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한국여성개발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혼 여성들이 이혼 후 가장 크게 경험한 것은 경제적 어려움(15.6%)이었다.

▽이혼 이후의 돈 관리는 더 중요=위자료와 분할 재산을 충분히 받는다 하더라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자산운용 경험이 없는 여성들이 거액의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한꺼번에 날리는 경우도 있다.

몇년 전 이혼한 주부 강모씨(50)는 위자료 4억원을 받은 뒤 각종 투자 권유를 받았다. 강씨는 일단 2억원으로 스킨케어숍을 창업하고 1억원을 친척의 땅에 투자했다. 남은 돈은 “임원 자리를 주겠다”는 한 회사의 제안을 받고 그 회사에 쏟아 부었지만 회사는 얼마 안돼 부도가 났다.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고 창업한 가게는 아직도 적자가 계속되는 상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던 최씨는 결국 아이들 양육비 등을 위해 최근 은행에서 거액을 대출받아야 했다.

재테크 및 이혼 전문가들은 여성이 금융 지식을 키우려면 부부가 함께 재산내용, 운용정보 등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자연스러운 역할 분담으로 어느 한 쪽이 돈 관리를 책임지게 되더라도 의사결정 과정에는 상대방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이혼전문 ‘나, 우리 법률사무소’의 이명숙 변호사는 “평소 재산은 가능한 한 공동명의로 해 놓거나 절반씩 각자의 이름으로 해 두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혼 논의가 진행되는 시점에서는 재산을 미리 파악해 두고 등기필증이나 통장 등을 복사해 놓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여성들의 모임이나 금융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미국에서는 이혼 등 인생의 변화를 겪는 여성의 경제적 자립능력을 키워 주는 ‘와이프’(www.wife.org)라는 비영리 단체가 각종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는 이혼 여성들의 경제력을 높여 주는 교육과정이나 단체가 많지 않은 편. 한국투신협회 김일선 교육연수부 이사는 “겉핥기식의 단편적인 경제 강의는 많아도 여성에게 꼭 필요한 금융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은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를 활용해 장기적인 자산 설계를 할 수 있는 상담 ‘창구’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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