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사회 대책 서둘자]<1>경제성장의 ‘덫’ 으로

  • 입력 2003년 10월 5일 19시 02분


“고령화가 이대로 계속되면 전체 인구에서 취업자의 비중은 줄고 저축과 투자도 감소해 경제성장률이 대폭 하락할 것이다. 잠재성장률은 2030년에 2%대, 2050년에 1%대로 떨어진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고령화의 경제적 영향에 대한 분석’ 보고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고령화는 단순한 인구구성 변화를 뜻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경제에는 직접적 타격을 가할 ‘뇌관’으로 꼽힌다.

일하는 청장년층은 줄어드는 반면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노인층이 많아지면서 △노동인구 비율 감소 △저축률 하락 △재정악화 등으로 성장 동력에 큰 차질이 예상된다. 경제전문가들은 ‘고령화의 덫’의 의미와 심각성을 깨닫고 빨리 대처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역(逆) 피라미드’ 인구구조 가속화=일본에서는 1989년 ‘1.57쇼크’라는 신조어(新造語)가 나왔다. 그해 일본의 출산율이 1.57명으로 떨어지면서 언론과 경제연구기관은 일제히 경고등을 울렸다. 이어 2001년에는 출산율이 1.33명으로 낮아졌다.

지난해 출산율이 1.17명으로 떨어진 한국은 더 심각하다. 70년 4.53, 83년에는 2.08명이란 가파른 출산율 하락추세가 이를 잘 보여준다.

반면 평균수명은 빠르게 늘고 있다. 81년 66.2세에서 2001년에는 76.5세까지 높아졌다. 현재 30, 40대들은 평균 80세까지는 살 수 있을 전망이다. 통계청은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2020년 80.7세, 2030년에는 83세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김현진(金顯眞)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빠른 속도로 ‘역피라미드’형으로 변해가는 불안정한 인구구조는 경제와 사회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제성장의 최대 장벽=인구 고령화는 가장 먼저 ‘생산’에 직격탄을 날린다. 일할 사람은 격감하는데 사회가 부양해야 할 노인인구 비중은 늘어 경제활력이 떨어지기 때문.

2000년 현재 65세 고령인구는 340만명으로 전체인구 4700만명의 7.2% 수준. 이 비율은 2020년에는 15.1%로 늘고, 2030년에는 23.1%로 급증할 전망이다.

반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생산인구(15∼64세)는 2003년 현재 8.6명에서 2020년에 4.7명, 2030년에는 2.8명으로 감소한다. 그만큼 젊은층의 부담은 커지고 성장활력은 위축된다.

방홍기(方鴻基) 한국은행 동향분석팀 조사역은 “인구 고령화와 노인부양 부담 증가로 노동력과 저축률의 감소는 물론 연금수급자의 증대에 따른 재정수지 악화도 예상된다”며 “이는 결국 우리 경제의 성장력을 감퇴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외전문가들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제프리 윌리엄슨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등 동북아 국가들은 베이비붐 세대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왕성한 노동인구로 자란 ‘인구통계학의 선물’을 바탕으로 초고속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며 “이제 이런 ‘인구 보너스’가 사라져 경제성장이 둔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책에도 영향력 커질 듯=주요 선진국은 연금문제로 몸살을 앓으면서도 과감히 손질하지 못하고 있다. ‘기득권층’인 노인층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이들의 정치적 입김은 갈수록 높아지는 구조로 가고 있다.

연금 혜택의 가시권에 들어가는 50세 이상 인구는 97년에는 전체 유권자의 27%였다. 하지만 이 비율이 2010년 38%, 2020년 46%까지 올라가고 2030년에는 53%로 절반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현승(李炫昇) GE인터내셔날 상무는 “앞으로 등장할 ‘노인실업’ ‘의료 및 사회복지 증대’ ‘연금개혁’등 주요한 사회적 이슈는 노인층의 정치적 파워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경제와 사회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라도 고령화에 어떻게 대처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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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대국' 일본의 경우는…▼

인구 고령화는 일본경제의 성장 동력을 떨어뜨린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노인층 인구 비율이 높아지면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든 반면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비용은 급증했기 때문. 돈을 버는 사람은 적고, 사회가 지원해야 할 사람은 많은 ‘수지(收支) 불균형’ 체제가 만들어진 셈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고령화도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유엔이 정한 고령화사회(전체 인구의 7% 이상이 65세 이상)에 1970년 도달했다.

또 고령사회(전체 인구의 14% 이상이 65세 이상)로 진입한 시기는 1994년으로 24년이 걸렸다. 프랑스(115년) 스웨덴(85년) 영국(47년) 등과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고령화는 소비를 위축시켰다. 노인 저축 비중이 높아지면서 시중에 자금이 돌지 않고 소비를 가라앉힌 한 원인이 됐다.

2001년 9월 말 현재 65세 이상 일본인들의 저축액은 268조엔으로 전체 가계 저축액 720조엔의 37.2%나 된다. 노인 1인당 평균 1216만엔(약 1억2000만원)을 저축하는 셈. 하지만 노인층의 소비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있다.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과 노후대비 심리가 겹치면서 돈을 쓰지 않는 것.

재정적자 급증과 노동생산성 악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99년 기준으로 고령자 의료비는 전체 31조엔 중 절반을 넘는 50.04%를 차지해 건강보험 재정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

80년대까지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았던 일본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90년대 이후 급속한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70년대 일본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3.7%로 독일(2.6%) 영국(1.7%) 미국(0.6%)보다 월등히 높았다. 1980년대에도 일본이 2.9%였던 반면 독일이나 미국은 1.7%와 1.4%에 그쳤다.

하지만 1990년대에는 이런 추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일본이 0.5%에 그친 반면 미국은 2.0%, 영국은 1.8%, 독일 1.3%로 일본을 추월했다.

▼특별 취재팀▼

▽팀장=권순활 경제부 차장

▽팀원=김광현 송진흡 고기정 박중현

신치영 신석호 이나연 최호원

차지완 기자(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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