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도 강남으로 이사 가요.”
“왜?”
“남학생과 미팅을 할 때 집 전화번호가 강남 쪽이 아니면 ‘애프터(또 만나자는) 신청’이 안 들어와요.”
“하하하, 아빠가 사장이라고 하지.”
“에이, 그 말을 어떻게…. 그냥 이사해요.”
‘강남 살지 않으면 선보기도 힘들다’는 말도 들은 터라 요즘 그는 맘이 흔들리고 있다.
다른 대학생의 이야기다.
“친구를 사귈 때 강남 출신은 강남 출신끼리, 강북 출신도 그들끼리 어울리곤 합니다. 강북 출신이 강남 친구들 사이에 끼면 분위기나 노는 문화가 워낙 달라 불편하거든요.”
강남이 ‘그들만의 특별구’로 변신하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베벌리힐스 같은 부자동네가 서울에 형성되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는 시각도 있다. 강남 방치론이다. 사실 서울에는 강남 이전에도 성북동이나 평창동 같은 부촌이 있었다.
그러나 성북동의 경우 ‘그런 데가 있지’하며 무관심할 수 있지만 강남은 그게 안 된다는 차이가 있다. 교육 때문이다. ‘왜 강남에 살려 하는가’ 설문해 보면 교육여건 때문이라는 대답이 압도적이다. 강남이 가진 조건으로 접근성, 녹지, 문화환경, 중상류층 커뮤니티 등을 들지만 가장 중요한 흡인력은 교육이다. 한국인들이 주거지를 고를 때 교육은 ‘여러 요소 중 큰 가중치를 지닌 하나’가 아니다. 충족이 안 되면 아예 후보에서 빠져버리는 ‘탈락요건(failure factor)’이다.
이 때문에 애 키우는 서울사람은 강남 못가서 안달이며, 항상 박탈감을 느낀다. 이 점에서 강남은 방치해도 좋을 문제가 아니다.
원인이 그렇다면 강남문제 해법에 교육대책이 포함돼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중에서도 사설학원의 혜택을 강남권 학생이 독식하지 않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이에 대해 일부 교육부 관리들은 “강남 집값이 오르는 것은 교육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지만 저금리와 거주환경 등의 요인이 더 크다. 학원 대책을 강남 해법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 이는 공교육의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다”는 입장이라 한다.
참 답답한 사람들이다.
원래 공교육과 사교육은 서로 보완하며 경쟁하는 관계가 아닌가. 지금처럼 공교육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된 것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됐는가. 근대국가 후기의 일이며, 그 이전 장구한 세월 동안 사교육이 교육의 뼈대가 아니었는가.
자녀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맞으면 경찰에 신고하지만, 학원 강사에게 맞으면 항의조차 없는 현실이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끼치는 영향력에 있어 사교육은 이미 공교육을 능가했다. 이 같은 공교육 몰락의 현실에서 교육부 관리들은 아직 할 말이 있는가.
공교육 실패를 인정치 않겠다니, 그러면 국민을 속이고 거짓을 늘어놓겠다는 말인가. 이런 사람들에게 계속 교육정책을 맡겨야 하는가.
의문이 꼬리를 문다.
허승호기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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