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포석 人事의 세계]재경부·예산처<下>조직-인사 스타일

  • 입력 2003년 10월 21일 18시 15분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오른쪽)과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은 행정고시 동기이면서 옛 재무부와 옛 경제기획원을 대표하는 각료다. 올 3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 앞서 두 장관이 회의 안건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오른쪽)과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은 행정고시 동기이면서 옛 재무부와 옛 경제기획원을 대표하는 각료다. 올 3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 앞서 두 장관이 회의 안건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의 전신은 경제기획원(EPB)과 재무부(MOF)다. 명실상부한 한국 경제 관료의 두 기둥이다. 개발 시대 이후 한국 경제는 ‘명예롭다(honorable)’는 경제기획원과 ‘막강하다(powerful)’는 재무부가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면서 떠받쳐 왔다.

그러다가 김영삼(金泳三) 정부가 들어서면서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두 부처를 합쳐 1994년 말 재정경제원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면서 환란 책임의 화살이 ‘공룡부처’였던 재경원에 돌아왔다. 이에 따라 재경원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헤쳐 모여’를 해야 했다.

그 결과 옛 금융 세제 국고 등 재무부의 본류는 재경부에 남아 ‘다수파’를 이루고 일부가 금융감독위원회로 떨어져 나갔다.

옛 기획원 소관 업무 대부분은 예산처로 흡수됐으나 경제정책국 등 일부 정책부서는 재경부에 ‘소수파’로 남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부분이 옛 기획원 멤버들이다.

전반적으로 재경부는 옛 재무부의 분위기가 강하고 예산처는 옛 기획원의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두 부처의 인사와 조직 스타일에도 이런 전통이 상당히 많이 있다.

재경부 인사가 ‘조직적’이라면 예산처는 ‘개인적’이다. 옛 재무부에서는 운동을 할 경우 팀플레이를 강조하는 ‘축구’를 즐긴 반면 기획원은 개인기를 중시하는 ‘야구’를 즐겼다는 사실도 두 부처의 상반된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재무부 출신인 재경부의 한 국장은 “재경부 국장급 정도 되면 정치권이든 장차관을 지낸 선배든 상당한 ‘배경’이 있다고 보면 된다”며 “심지어 고참 사무관만 돼도 후원자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재경부의 경우 승진이나 주요보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실력은 ‘기본’이고 배경과 연줄 등을 종합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재무부 시절 ‘이재국’의 국·과장은 경기고 경북고 등 특정고 출신이 아니면 발을 들여놓기 힘들었고 일부 과(課)는 사무관마저 전원이 특정고교 출신인 경우도 있었다.

퇴직 선배들과의 인연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재무부 출신 전·현직들이 우의를 다지는 축구시합이 벌어지면 금융기관 등 산하기관의 장으로 간 노(老)선배들이 직접 나와 격려금을 내놓는 것이 관례였다. 대신 현직 후배들은 퇴직 선배들을 산하 금융기관장으로 ‘모시는’ 등 끈끈한 인연을 과시, ‘모피아(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재무부 특유의 이 같은 조직문화는 치밀한 업무처리와 강한 추진력이라는 장점을 낳은 요인이라는 평가도 있다.

지금 재경부에는 과거 재무부 시절의 이런 유습이 곳곳에 남아 있다. 재경부의 한 간부는 “요즘도 재경부나 금융기관장에 빈자리가 생기거나 개각 등으로 인사 요인이 발생하면 국회와 금융기관들이 몰려 있는 여의도와 연결되는 전화가 요란해진다”고 귀띔했다.

옛 재무부 소속이던 금융정책국장 국고국장 국제금융국장 경제협력국장 세제총괄심의관 등 요직이 모두 특정고교 출신이어서 재무부 때 뿌리 깊었던 ‘엘리트주의’가 여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경제기획원의 경우 개인플레이가 강하다 보니 특별한 연줄이 없는 사람도 능력으로 출세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김대중 정부 이전 역대 영남정권에서 진념(陳稔) 전 경제부총리, 강봉균(康奉均) 전 재경부 장관, 장승우(張丞玗) 해양수산부장관 등 호남출신 경제 관료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풍토와 관련이 있다.

예산처의 요직은 1급인 예산실장을 비롯해 국장급인 예산총괄심의관 기금정책국장 재정기획총괄심의관 등이 꼽힌다. 대체로 ‘총괄’이란 단어가 붙은 자리가 중시되는데 예산이나 기획 업무의 성격상 경제 전체를 보면서 여러 부처나 이해집단의 주장을 종합하고 조정하는 능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예산처의 한 국장은 “예산처 인사에도 외부 입김이 없진 않겠지만 엉뚱한 사람이 빨리 승진하거나 요직으로 가면 내부에서 ‘왕따’ 당하는 분위기”라며 “다음 인사를 대체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예산처 인사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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