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SK비자금 100억원 수수 사실이 확인된 뒤에도 각 정파는 서로 상대당을 겨냥해 먼저 ‘고백성사’를 요구하는 떠넘기기 공방만 벌이고 있을 뿐 모처럼 조성된 정치자금의 투명화를 위한 제도개혁은 논의의 물꼬조차 트지 못하고 있다.
▽제자리 맴도는 정치자금 제도개혁 논의=중앙선관위가 정치자금 투명화를 포함한 정치개혁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한 것은 8월 27일. 주요 내용은 △100만원 초과 기부 및 50만원 초과 지출시 수표 신용카드 사용과 계좌입금 의무화 △100만원 초과 또는 연간 500만원 이상 정치자금 기부자 명단 공개 △20만원 이상 선거 비용은 신용카드 수표 계좌입금 등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분당 사태와 한나라당의 물갈이 논란 등 여야의 내부 갈등으로 2개월이 지나도록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목요상(睦堯相) 정개특위 위원장은 23일 “당론을 확정지어 제출해 달라는 호소에도 각 당에서 메아리가 없다. 선관위와 시민단체들이 제출한 개정 의견은 있지만 정작 각 당의 의견을 조율할 기본 재료조차 없는 실정이다”고 토로했다.
▽최대 장애물은 자기 고백 거부=SK비자금 수사를 둘러싼 정치공방이 오히려 제도개혁 논의의 발목을 잡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구 통합신당)은 이날 정치권의 모든 과거 대선자금 총선자금 공개를 촉구했으나 “먼저 전면 공개할 용의가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는 “함께 법 앞에서 발가벗자는 것이지 우리부터 공개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내부 검토가 필요하다”(정동채·鄭東采 홍보기획단장)며 발을 뺐다.
같은 당 이상수(李相洙) 총무위원장은 민주당 사무총장이던 7월 24일 대선자금 내용을 공개한다면서 정치자금법 규정을 들어 구체적인 기부자 명단의 공개를 거부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21일 ‘영수증 일련번호 외엔 공개를 금지할 이유가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려 공개 거부가 근거 없는 것임을 확인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법을 내세워 정치자금 공개를 거부해 온 정치권의 ‘검은 자금’ 수수 실태를 전면 공개하라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정치개혁연대 소속 회원 10여명은 21일 서울지검 앞에서 재벌의 정치자금에 대한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여야의 대선자금 완전 공개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숙명여대 이남영(李南永·정치학) 교수는 “기부자 명단을 공개하면 정치자금 수입이 봉쇄된다는 이유로 야당이 공개를 반대하는 것이 제도개혁 논의에 장애가 되고 있다”며 “완전선거공영제와 소액 다수 활성화 원칙부터 합의한다면 여야간 논의의 출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자금 투명화 관련 법개정 추진 일지 | |
2003.7.20 | 중앙선관위, 정치자금 수입 지출의 예금계좌 사용 의무화 등 정치개혁안 발표 |
7.24 | 민주당, 지난해 대선 후원금 공개 |
8.27 | 선관위, 정치개혁의견서 국회제출 |
10.2 | 민주당, 선관위의 개정의견 토대로 법개정추진 당론 확정 |
10.14 |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 국회 연설서 선거공영제와 정치자금 단일계좌, 수표 카드 사용 의무화 등 개혁안 제시 |
10.16 | 통합신당 김근태 대표, 국회 연설서 지난 불법 정치자금을 고백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특별법 제정 촉구 |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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