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제도개혁 안되면 정치자금 안낸다”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8시 05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정치권이 정치자금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정치자금을 한 푼도 내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전경련은 또 SK비자금 문제로 사퇴한 손길승(孫吉丞) 회장 후임에 동아제약 강신호(姜信浩·76) 회장을 전경련 회장대행으로 추대했다.

전경련은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회장단 간담회가 끝난 뒤 발표문을 통해 “회장단은 (정치권이) 정치자금에 대한 수요축소, 정치자금 수입과 지출의 투명성 제고, 정치자금의 모금과 배분제도 변경 등 정치자금과 관련한 제반제도를 개선해 주기를 강력히 요청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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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은 이어 “정치자금에 대한 제도개혁이 전제되지 않는 한 재계는 일체의 정치자금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재계의 방침은 정치권에서 정치자금에 대한 제도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합법적인 후원금까지 내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돼 큰 파장이 예상된다.

전경련은 최근 SK비자금 사태 등과 관련해 “일부 기업이 정치자금 문제에 연루돼 국민들에게 실망과 좌절을 안긴 점에 대해 송구한 마음을 갖고 어떤 꾸짖음과 질타도 달게 받겠다”며 대국민 사과의 뜻을 밝혔다.

전경련은 또 “일부 기업의 정치자금에 대한 논란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불확실성을 증가시켜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키고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정치자금 논란이 기업전반으로 확대되지 않고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기대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사퇴한 손 회장은 “저로 인해 회원사와 국민 여러분께 많은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2월 7일 김각중(金珏中) 회장 후임으로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지 8개월 20여일 만에 중도 사퇴해 역대 전경련 회장 중 최단임 기록을 세웠다.

이에 따라 전경련 회장단은 관례에 따라 회장단 중 최연장자인 강신호 회장을 회장대행으로 추대했다. 강 회장대행은 내년 2월 정기총회 때까지 한시적으로 전경련을 이끌게 된다.전경련은 그동안 ‘재계 빅3’로 불리는 삼성 이건희(李健熙) 회장, LG 구본무(具本茂) 회장, 현대·기아자동차 정몽구(鄭夢九) 회장을 추대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이들은 하나같이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강신호 회장도 처음에는 고령을 이유로 회장대행 추대 요청을 고사해왔으나 회장단이 간곡하게 설득하자 이를 수락했다.

한편 이날 비공식 간담회에는 손길승 회장, 현명관(玄明官) 부회장, 강신호 회장 등 재계 인사 16명이 참석했으나 삼성 이건희 회장 등 재계 빅3는 불참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강신호 회장대행은

‘박카스’로 유명한 동아제약 설립자의 아들이다.

강 회장은 1952년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에 유학해 박사학위를 땄을 정도로 학구파. 강 회장은 그동안 전경련 이사, 한국제약협회 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 재계 단체의 주요 직책을 거쳤다.

현재 전경련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전경련 회장단 회의 등 전경련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전경련 활동에 적극적이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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