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참 기부’… 300억 기부 정문술 회장 "할일 했을뿐"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8시 23분


30일 오후 4시 대전 유성구 구성동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정문술 빌딩’ 준공식이 열렸다. 이 빌딩은 정문술(鄭文述·67·사진) 전 미래산업 회장의 기부금 300억원 가운데 110억원을 들여 세운 지상 11층, 지하 1층(연건평 2738평) 규모의 건물.

그러나 정작 주인공인 정 전 회장은 이날 준공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행사에 참석할 경우 과도하게 치켜세우는 등의 불필요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정 전 회장이 휴대전화도 받지 않고 잠적해 버렸다”는 홍창선(洪昌善) 총장의 설명을 전해들은 참석자들은 일순간 숙연해졌다.

학교측은 정 전 회장이 당초 준공식에 참석은 하되 축사를 하거나 감사패를 받지는 않겠다고 함에 따라 간단한 기념품과 꽃다발을 준비했었다.

그는 지난해 5월 열린 이 건물 기공식 때도 같은 이유로 불참했다. 상당수의 언론이 ‘자신의 이름이 붙은 건물 기공식이니 당연히 참석했을 것 아니냐’고 판단해 그를 참석자 명단에 넣어 오보를 내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그는 공사기간 중에는 아예 KAIST에 발길을 끊었다. 다만 최근 학교측으로부터 완공된 건물 사진을 전달받고 홍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변변치 않은 돈으로 번듯한 건물을 짓고 새로 학과(바이오시스템학과)까지 만들어줘 고맙다”고 인사했다.

정 전 회장의 기부를 주선한 이 학교 이광형(李光炯·전자전산학과) 교수는 “‘정문술 빌딩’이라는 이름을 지을 때도 본인이 하도 펄쩍 뛰어 학교측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행동은 그의 인생을 살펴볼 때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짓’이라고 했던 앤드루 카네기 등에게 감명을 받았다는 그는 ‘기부는 지속적이고 생산력이 있어야 하며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소신을 펴 왔다. 이 때문에 2개월 안에 KAIST에 30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2001년 7월 반도체 불황으로 미래산업의 주가가 크게 떨어져 있었지만 그대로 처분해 약속을 앞당겨 20일 만에 지켰다.

“유산은 독”이라며 자녀들에게 돈을 물려주지 않고 회사 경영권도 전문 경영인에게 넘긴 것은 소신의 또 다른 실천이었다.

대전=지명훈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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