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시장개혁 로드맵']총수 ‘손발묶기’… 규제만 늘어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8시 28분


공정거래위원회가 30일 내놓은 ‘시장개혁 3개년 계획’ 로드맵은 대기업 총수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제 돈을 주고 산 지분만큼만 의결권을 행사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도 졸업 기준을 현행 ‘부채비율 100% 미만’에서 ‘의결권 승수 2이하’로 바꿨다.

또 구조조정본부(구조본)의 자금원을 공개해 총수의 손발을 묶겠다는 방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은 기업의 재무구조나 수익성 증대보다는 총수의 영향력 축소에만 집중돼 본말이 전도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대기업 총수 견제에 초점=의결권 승수는 총수와 그 일가가 갖고 있는 지분과 총수가 행사하는 의결권의 괴리도를 지수로 나타낸 것이다.

공정위는 의결권 승수가 2이하면 출자규제에서 졸업할 수 있다는 새 기준을 내놓았다. 기업이 새로 투자할 수 있는 여지를 해당 기업의 자금 여력이나 부채비율이 아닌 소유·지배구조로 정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4월 1일 현재 삼성의 의결권 승수는 8.9, 현대자동차는 8.6, SK는 16.2로 집계됐다.

의결권 승수를 낮추기 위해서는 총수가 자기 돈을 투입해 주식을 사서 소유권을 높이든지, 계열사 지분을 팔아 지배권을 낮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정 수준(순자산의 25%) 이상 신규 투자를 할 수 없다.

계열사가 5개사 이하이고 3단계 이상 출자(손자회사까지만 인정)가 없는 그룹에 대해서도 출자규제에서 졸업시킬 수 있다는 요건도 총수의 지배력 약화를 겨냥한 것이다. 사실상 그룹을 분할하라는 뜻이다.

연세대 정창영(鄭暢泳·경제학) 교수는 “글로벌 경쟁에서는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인데도 소유·지배구조에 의해 출자한도를 제한하게 되면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등 집중 관리=이번 출자규제 개편안의 또 다른 특징은 재무건전성과 무관하게 일부 기업에만 규제가 몰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 현재 출자규제를 받고 있는 11개 민간 대기업 가운데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LG는 2005년부터 출자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의결권 승수가 낮은 현대중공업, 동부, 금호, 한진 등도 출자규제에서 졸업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삼성, 현대자동차 등은 △의결권 승수 2이하 △지주회사 △계열사 수 5개 이하 △내부견제시스템 확보 등 공정위가 제시한 4가지 요건을 갖추기 어렵다는 점에서 당분간 출자규제에서 벗어나기 힘들 전망이다.

특히 부채비율이 101.3%(2002년 말 기준)인 삼성은 기존 출자규제 졸업요건에는 근접해 있지만 새 요건을 적용하면 졸업이 어렵다. 부채비율이 낮은 롯데도 새 요건에 따라 출자규제 대상에 포함될 공산이 크다.

▽구조조정본부 해체 가능할까=현행 공정거래법은 ‘사업체’만을 적용 대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임의단체인 구조본에 대해 공정위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공정위도 이를 의식해 구조본의 자금명세를 공개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특별법을 만들지 않는 한 각 그룹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구조본을 제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번 공정위의 계획은 ‘희망’에 그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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