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 ‘미원’이 보통명사인 조미료를 대신했듯이 주부들이 ‘드럼세탁기’ 대신 ‘트롬세탁기’라고 말할 때마다 웃음 짓는 사람들이 있다.
제조회사를 감추고 상표를 강조한 탓에 아직 LG전자 제품인지 모르는 소비자가 있어도 상관없다. LG전자 ‘트롬’팀 10명은 이런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며 상표명을 결정했기 때문.
2001년 12월. 시판을 3개월 정도 앞두고 이름을 결정하기 위한 회의가 점점 더 잦아졌다. 최종으로 남은 후보 중에는 ‘리또’와 ‘세라프’라는 이름도 있었다.
당시 이름 결정에 참여했던 박균호 과장(38)은 “처음에는 ‘리또’가 우세였는데, 결국은 독일어로 드럼을 뜻하는 단어(Trommel)에서 나온 ‘트롬(TROMM)’이 이겼죠. 드럼과 발음이 비슷한 것이 큰 점수를 땄습니다. ‘리또’로 결정됐으면 그 뒤에 나온 복권 ‘로또’ 때문에 고급 이미지를 얻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시 국내 드럼세탁기 시장에는 GE나 아에게, 지멘스 등 외국 제품이 전부였다. 그래서 제조회사 이름은 제품을 알리는 과정에서 쏙 빼버렸다. LG전자라는 이름은 애프터서비스를 위해 제품 박스에 남겼을 뿐이다.
트롬은 시판 1개월 만에 외국 드럼세탁기를 제치고 판매실적 1위를 기록하는 등 작년 한 해 돌풍을 일으켰다. 시판 6개월 후에는 ‘드럼 세탁기 하면 어떤 제품이 떠오르느냐’는 인지도 조사에서 트롬이 68%라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고, 현재는 80%로 높아졌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 옷감을 덜 상하게 하면서 때를 빼는 우수한 세탁력과 고급스럽고 세련된 상표 이미지가 잘 결합된 결과라는 것이 자체 판단이다. 옷감을 덜 상하게 한다는 기능성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광고문구는 ‘오래 오래 입고 싶어서’였다.
국내 마케팅부문 정준행(鄭俊幸·54) 상무는 “국내 경쟁사보다 제품을 먼저 선보이며 시장을 선점한 효과를 많이 봤다”며 “유명세를 탄 ‘트롬’이라는 상표를 식기세척기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성공에 힘입어 북미지역(10kg 이상 대형제품)이나 중국, 대만에 수출하는 제품에도 ‘트롬’이란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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