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에너지 사용량을 정부 권장기준의 3분의 1로 줄인 집이 등장했어요. 쾌적함까지 갖춘 게 큰 장점이죠.”
에너지대안센터와 광주환경연합 초청으로 지난달 27일 방한한 독일의 건축가 귄터 뢰너르트(52)의 말이다.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졸리다 건축사무소는 태양건축의 개념을 도입해 유럽에서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활발히 수행해 왔다.
태양건축. 얼핏 생각하면 지붕 가득히 태양열집열판을 설치한 ‘색다른’ 집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는 일반인에게 익숙한 상징적 모습일 뿐이다. 실제로 집열판은 태양건축물에서 좀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경우 사용되는 보조수단이다. 태양건축의 핵심은 열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차단(단열)하고, 실내 공기를 신선하게 유지하는 일(환기)이다.
이런 작용만으로도 건물 자체가 에너지 절약을 능동적으로 수행한다. 또한 신선한 바깥 공기가 항상 실내에 들어와 쾌적한 환경을 누릴 수 있다. 태양, 바람과 같은 재생 가능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오염의 우려도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국립한밭대 건축공학과 윤종호 교수는 단독이나 다가구주택에 적용되는 유럽 태양건축 리모델링의 대표적인 사례로 투명단열을 꼽는다. 현재의 건물 벽에 폴리카보네이트 등의 투명한 유기소재를 붙이면 된다. 낮에 이 유기소재에 흡수된 태양열이 천천히 안쪽 벽면으로 이동해 밤에는 실내로 열이 발산된다.
아파트 리모델링에는 유리로 둘러싸인 온실형 발코니가 적용될 수 있다. 윤 교수는 “한국 아파트에도 유리 발코니가 설치되고 있지만 에너지 절약 효과는 적다”며 “일례로 이중유리 안쪽에 특수코팅으로 처리해 안쪽 열이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선한 공기는 어떻게 만들까. 창문 없이 쾌적함을 유지하는 백화점을 떠올리면 된다. 벽에 설치된 팬으로 공기를 강제 순환시킨다. 다만 빠져나가는 공기의 열을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에 전달하는 열교환장치가 있어 85% 정도의 열이 회수돼 실내온도가 유지된다.
여름에는 간단한 방법으로 고층빌딩의 냉방을 책임질 수 있다. 한국의 경우 햇빛을 가리는 차양이 대부분 실내에 있다. 하지만 유럽은 거의 모든 차양이 창문 바깥에 있다.
윤 교수는 “태양빛이 유리를 통과한 후 열로 바뀌면 파장이 길어져 다시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실내가 더워진다”며 “바깥쪽에 차양이 있으면 태양열을 절반 이상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싼 게 흠이다. 세명대 건축학과 이태구 교수는 “아파트 신축 비용을 평당 300만∼350만원으로 볼 때 보통 리모델링에는 절반 정도의 가격이 필요한데 태양건축형인 경우 15% 정도 비싸다”고 말했다. 열교환장치를 가정에 설치할 경우 비용은 300만원대.
하지만 이 교수는 “에너지 사용이 줄어들어 10년 후면 본전”이라며 “실내 환경의 질이 높아진 효과를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이익”이라고 덧붙였다.
또 뢰너르트 소장은 “태양건축물을 지을 때 설계단계부터 통합적으로 접근하면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며 “독일은 현재 일반 건축물과 거의 비슷하게 비용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독일의 성공사례는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뒷받침된 결과다. 에너지대안센터 이상훈 사무국장은 “일례로 통일 후 건축된 베를린의 연방하원 의사당 건물에는 태양건축을 상징하는 유리돔이 우뚝 솟아 있다”고 말했다. 또 식물성 기름이나 지열을 열원으로 삼는 등 재생 가능 에너지만으로 건물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15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는 수도 이전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광화문 정부청사를 매각한다는 조항이 달려 있었다. 만일 재건축이 이뤄지면 지금보다 높은 고층건물이 빽빽이 들어설 수 있다. 에너지원을 100% 가깝게 수입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청사를 태양건축물로 리모델링해 서울의 상징으로 삼는 건 어떨까.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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