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換亂 당시 긴축재정정책 IMF 요구조건 아니었다"

  • 입력 2003년 11월 5일 18시 05분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한국의 긴축재정정책을 주도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아니라 한국 정부였다는 IMF 주요 인사의 증언이 나왔다.

다카기 신지(高木信二·사진) IMF 고문은 최근 본보와 가진 단독 e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직면할 것이 확실해짐에 따라 IMF는 당초의 흑자재정 목표를 적자 편성으로 선회했으나 한국 정부가 이에 대해 소극적이었다”고 밝혔다.

다카기 고문은 “한국의 소극적 태도는 정책당국자들이 오랫동안 견지해 온 보수적 재정편성 원칙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위기 직후에는 대규모 적자정책을 펴는 것이 경기침체의 심화를 둔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세계적 금융전문가인 그는 IMF가 한국 등 외환위기를 겪은 국가들에 대한 IMF의 구제금융 정책을 평가해 7월 말 완료한 평가보고서의 작성책임자다.

다카기 고문은 또 “IMF는 98년 한국 경제가 제로 또는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 것으로 보았으나, 한국 정부는 그해 초 정치적인 이유로 플러스 성장전망을 내놓을 것을 주장했고 IMF가 이를 수용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IMF 구제금융 조건에 포함된 재벌 등 비(非)금융부문 구조조정 정책과 관련해 “한국의 ‘개혁성향 관료’들이 ‘개혁’을 위한 기회로 외환위기를 활용한 게 사실”이라며 “그러한 구체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IMF 융자조건에 포함될 필요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다카기 고문은 또 “IMF가 97년 12월 4일 발표한 550억달러 규모의 ‘한국 구제금융 패키지’가 현실성을 결여했고,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켰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패키지가 20%로 예상되던 한국에 대한 외국은행들의 롤 오버(부채 연장) 비율을 80%로 부풀렸고 이것이 IMF 한국 패키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고 설명했다.

다카기 고문은 한국경제연구원 초청으로 12월 초 한국을 방문해 IMF 평가보고서 내용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의 한 당국자는 “한국 정부는 IMF의 구제금융 계획에 따라 재정 운용을 했을 뿐 긴축재정을 요구한 적이 없다”며 긴축재정정책을 한국 정부가 주도했다는 다카기 고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 당국자는 또 한국 정부가 98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높게 책정하도록 요구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 IMF는 경제성장률을 비관적으로 봤지만 한국은 긍정적으로 전망했다”며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이는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용기기자·국제정치경제학박사 ykim@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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