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제도 개선요구]財界 “돈주고 뺨맞기 이제 그만”

  • 입력 2003년 11월 6일 18시 32분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오른쪽)이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전경련이 마련한 ‘정치자금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간부들과 의논하고 있다. -연합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오른쪽)이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전경련이 마련한 ‘정치자금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간부들과 의논하고 있다. -연합
‘기업이 제공하는 정치자금은 앞으로 전경련이 창구가 돼 배분하겠다.’

‘친(親)기업 정당에 정치자금을 몰아주겠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6일 발표한 정치자금제도 개선방안의 골자다.

‘돈 주고 뺨 맞는’ 악순환은 반복하지 않겠다는 정도의 얘기가 아니다. 정치자금을 통해 전경련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핵심 주장=이번 개선방안의 핵심은 △기업과 정당의 직접접촉 금지 △전경련 등 제3자를 통한 정치자금 제공 △지정기탁금제의 부활 등이다.

지정기탁금제는 과거에도 있었으나 여권 편중 현상이 심하다는 지적에 따라 97년 11월 폐지됐다. 현명관(玄明官) 전경련 부회장은 ‘정치자금이 친기업 정당에 몰리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럴 가능성이 있고 그걸 바라고 있다”고 내놓고 말했다.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강탈당할 것이 아니라, 떳떳이 내고 그에 걸맞은 요구도 하겠다는 뜻.

한편 개별 기업과 정치권의 직접적인 정치자금 수수를 금지할 경우 전경련과 같은 경제단체가 정치자금의 모집과 배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정체성의 위기에 몰리고 있는 전경련이 일거에 위상을 회복하게 되는 셈.

이에 대해 전경련은 “양성적인 정치자금을 모아 정치권에 전달하는 통로가 마련돼야 음성적인 불법거래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 안 중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과거 정치자금 위반 행위에 대한 일괄 사면 제안. 이규황(李圭煌) 전경련 전무는 “과거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경우 회계의 특성상 과거의 분식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일괄 사면을 주장했다.

▽정치개혁도 요구=전경련은 또 정치자금 수요축소를 강력하게 주문했다.

중앙당은 전국위원회사무소, 지구당은 연락사무소 수준으로 축소할 것을 제안했다. 사무실이나 용역제공 등도 ‘정치활동과 관련된 수입과 지출’로 포함시켜 정치자금법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앞으로 정치자금법이 개정됐을 경우 향후 범법 행위에 대해서는 정치자금 기부자나 해당 정치인 모두를 처벌하는 등 처벌조항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정치자금법 위반 정치인에 대해선 20년 동안 피선거권을 금지하고 사면과 복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

이와 함께 정치자금 관련 회계보고서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고, 그 내용에 대해 외부 회계감사를 받도록 하는 등 투명한 정치자금 운용을 주문했다.

▽전경련 안의 실현 가능성=전경련은 이날 발표한 방안에 대해 선관위와 상당부분 조율 작업을 마쳤다고 밝혔다. 그러나 돈으로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슬그머니 전경련의 위상까지 강화하려는 의도를 정치개혁으로 해석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전경련은 한편 선관위의 법인세 1% 정치자금 제공안에 대해 반대한다. 또 전경련은 지정기탁금제에서 기부자의 의견을 100% 반영하자는 반면 선관위는 60% 정도 반영을 주장하는 등 일부 안에 대해선 의견차이도 있다.

그러나 정치개혁을 바라는 여론의 힘이 크기 때문에 전경련의 개선방안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법 통과시 상당 부분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현명관부회장 문답▼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6일 정치자금 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한국 사회가 정치자금과 관련해 겪고 있는 지금의 혼란이 정치 발전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판단해 전경련 차원에서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현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지정기탁금제가 부활되면 과거처럼 특정 정당에만 정치자금이 몰릴 가능성은 없나.

“과거 지정기탁금제가 있을 때 여당에만 기탁금이 가고 야당에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 사이 정치 수준이 높아졌다. 그런 문제가 합리적으로 시정될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친(親)기업적인 정당과 정치인에게 몰릴 가능성은 없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그러기를 희망한다.”

―개별 기업의 직접적인 정치자금 제공을 금지하고 전경련이 통로 역할을 맡으면 과거처럼 강제 할당의 폐해가 나타날 가능성은 없나. 또 전경련이 정치자금 배분을 독점한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는데….

“아니다. 우리는 다만 심부름만 하는 것이다. 개별 기업들은 선관위에 낼 수도 있고, 자기가 속한 다른 경제단체에 낼 수도 있다. 그것은 기업이 선택하는 것이다.”

―만약 올해까지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이 전경련 개정안의 취지대로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분위기상 어떤 형태로든 정치자금법은 개정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뜻대로 100%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선관위와 공동안을 마련하기로 한 만큼 많이 반영될 것이다. 정치권에도 재계의 뜻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요청할 것이다.”

―과거 위법행위에 대해 민사상 사면을 할 경우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것 아닌가.

“민감한 문제다. 그러나 3년 전, 5년 전 이뤄진 분식회계를 계속 끌고 갈 수 없는 것 아닌가. 국민적 동의를 전제로 제안한 것이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