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해고된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이 받는 충격, 가족 내 위치와 역할의 역동적 변화가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특히 ‘체면=목숨’인 우리 문화에서는 가족에게도 가장의 해고는 엄청난 충격이 된다. 따라서 해고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다른 직장을 찾는 것 외에도 초기부터 이러한 변화들을 당사자와 가족이 예측하고 대비하고 대응해야 한다.
우선 당사자에게는 소속감이 없어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양과 달리, 집단이 개인보다 우선시되는 우리 문화에서는 집단을 떠나 홀로 남겨진다는 것은 거의 생존에 대한 위협이다. 더욱이 평소 가족간의 관계가 별로 안 좋아 직장과 동료들만이 마음으로 의존할 수 있는 중요한 대상이었다면 문제가 더 커진다. 평소 돌보지 못하던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고 힘들어도 노력해야 한다.
둘째, 가장인 남편이 퇴직을 하면 아내와의 관계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얼굴 보기 힘들다가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 부부간에 사이가 안 좋았다면 더욱 심리적인 부담이 커진다. 심하면 이혼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는 부부가 마주앉아 위기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합의점을 이끌어내야 한다.
셋째, 자식들과의 관계에서도 유교문화적인 가장의 권위가 갑자기 추락하므로 큰 변화가 온다. 예를 들면, 아버지의 입장에서 평소 같으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자식의 한마디를 이해하고 넘기기 어려워진다. 달라진 관계를 마음 아프지만 받아들이고 자식과 솔직한 대화를 갖도록 애써야 한다.
넷째, 부부간이나 자식과의 갈등이 가정폭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므로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한번 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자제력을 길러야 한다.
해고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고통스러운 경험이며 꿈과 환상의 좌절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새로운 기회이며 평생 소위 월급쟁이로 살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변환점일 수 있다. 공포는 공포를 유발하는 자극을 공포감으로 느끼는 사람에게만 공포이며, 그러지 않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자극일 뿐이다. 물론 감원에 대한 저항력이 개인의 경쟁력과 비례한다는 점을 잊지 말고 평소에 지속적으로 자기개발을 해야 한다.
한 잔의 술을 앞에 두고 회사 분위기에 대한 불만이나 동료와의 경쟁에서 나타나는 갈등에 대한 분노를 토로하는 것이 잠시나마 마음을 후련하게 해줄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음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감원 공포는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정도언 서울대 의대 교수·신경정신과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