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 꿈]김용호/꿈 캐러 印度로 간다

  • 입력 2003년 11월 19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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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대 출신’의 위치를 벗었어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랄까요? 이제는 좋은 대학 나왔거나 미국 연수 갔다 온 사람에게도 꿀리지 않아요.”

나와 동료 교수들이 함께 기획 운영하고 있는 1년 기한의 인도 정보기술(IT) 연수 ‘인도 창(窓) 프로그램’의 수료자인 이철민씨의 얘기다. 그는 성공회대 졸업생이다. ‘꿀린다’는 말은 점잖지는 못해도 아주 솔직한 표현이다.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은 그 꿀리는 느낌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어느 대학에 다니느냐”는 질문에 “성공회대요”라고 대답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무슨 대학이요?”라는 되물음이나 “그런 대학도 있어요?”라는 반응을 듣는다면…. 그 다음부터는 그런 질문을 받을 만한 상황을 피하게 된다. 어쩔 수 없으면 “그냥 S대 다녀요”라고 해 버린다. 한번 피하면 계속 도망가게 된다. 상대가 정말 사귀고 싶은 이성이거나 다니고 싶은 회사의 면접관이라면 그 앞에서 위축되는 자신이 답답할 따름이다.

이씨를 비롯해 적지 않은 인도 창 출신들은 학창 시절 숨겨 온 깊은 패배감과 열등감을 1년간의 인도 연수를 통해 극복하는 드라마를 체험했다. 휴대전화 제조사의 해외 마케터로 일하는 한 수료생은 “인도 창을 빼고는 현재의 나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하고, 인도 IT기업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는 다른 수료생은 그 분야 세계 최고의 회사에 진출할 꿈을 꾼다. 4기까지 100명을 배출한 인도 창 출신 중 절반이 한국이나 해외에서 국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 나와 동료 교수들은 일류대와 삼류대로 나뉘는 현실은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우리의 꿈은 ‘일류대’ 학생들도 하지 못하는 것을 ‘삼류대’ 학생이 해내 ‘꿀릴 수도 있는’ 삶을 반전시킬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인도 IT산업의 잠재력에 착안해 현지에서 IT교육기관 및 IT기업의 인턴십을 찾아다녔다.

연수생 선발에서는 토익 점수나 학과 성적보다 학생의 의지를 중시했다. 현지에선 집도 스스로 알아보도록 했고, 모든 학생이 현지 기업 인턴십을 마치도록 했다. 한 수료생의 말처럼 거의 ‘맨 땅에 헤딩’하는 과정이었다.

2000년 초 한국 최초의 인도 IT연수과정 ‘인도 창’이 열렸다. 1기를 보내며 우리는 ‘살아만 돌아오면 성공’이라고 했다.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보나, 인도의 생활환경을 보나, 토요일까지 풀타임으로 이어지는 수업과 인턴십을 견뎌낼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아주 잘 해냈다. 그 뒤 인도 창을 모델로 정부 지원책도 생겼고, 많은 대학이 유사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문의해 왔다. 성공회대 안에도 중국 창, 일본 창, 러시아 창이 새로 개발됐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컸다. 인도-파키스탄 분쟁 때는 대사관측과 연락하며 다급히 철수계획을 세워야 했고, 9·11테러 후 미국의 요청으로 인도행 비자 발급이 막혔을 때는 울고불고하는 학생들을 달래야 했다. 우리와 관습이 다른 인도 파트너와 협상할 때는 인내심을 발휘하느라 가슴이 터져야 했고, 가난한 작은 대학에서 없는 돈을 짜내 지원금을 만들어야 했고, CNN에서 인도 날씨를 보며 그들이 탈 없이 지내도록 기도해야 했다.

그러나 최대의 도전은 우리 안에 있었다. 우리는 다양한 두려움과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토플 점수가 높지 않으면 외국에서 공부할 수 없다는 두려움, 번듯한 시설과 숙소가 없으면 못 산다는 두려움, 인도인은 어떻고 인도 음식은 어떻다는 선입견에서 오는 두려움, 불확실성이 높고 많은 비용이 드는 교육 체계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불안감, 학생들의 진로와 인성에까지 깊이 개입해야 하는 데서 오는 교수로서의 정체성 불안…. 솔직히 정답이 무엇인지 확신은 없다.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이런 실천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뿐이다.

▼약력 ▼

△1957년 생 △서울대 철학과, 서강대 대학원 졸업(언론학 박사) △현재 성공회대 디지털콘텐츠학부 조교수 및 글로컬센터 소장 △저서 ‘와우’ ‘몸으로 생각한다’ 등

김용호 성공회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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