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고기정/이정우 정책실장의 '돌팔이 의사론'

  • 입력 2003년 11월 30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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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李廷雨) 대통령정책실장은 지난달 24일 서울대 기업경쟁력연구센터가 주최한 포럼에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 내용과 패널로 참석한 서울대 교수들의 고언(苦言)은 본보 11월 25일자와 26일자 A5면에 각각 ‘LG카드 사태, 본격적인 정면승부’ ‘참여정부 누가 참여했나’ 제하(題下)의 기사로 소개됐습니다.

당시 이 실장은 주제 발표 이후 짤막한 유머를 던졌습니다.

“한 환자가 의사에게서 치료를 받고 왔는데 병이 낫질 않고 더 심해졌다. 그래서 환자의 부인이 그 돌팔이 의사를 혼내주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환자는 병원에 갔다가 시무룩해서 돌아왔다. 이유를 묻자 그는 ‘병원 문 앞에 의사 뺨을 때리겠다는 환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어 의사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 실장이 느끼는 국정의 무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비유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질의응답이 시작된 뒤에는 답답한 마음이 남았습니다.

서울대 교수들은 현 정부의 정책 실패를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내용은 크게 △청와대 참모진의 자질과 경험 부족 △임기 말기형 권력 누수 △평등과 분배에 대한 지나친 집착 △능력에 비해 과도한 개혁 지향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혼돈 등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 실장은 정부의 5대 정책과제(균형발전, 부동산 안정, 교육 개혁, 여성의 사회 참여, 노사 문제 해결)를 다시 언급했습니다. 또 지금과 같은 혼란은 과제가 완수된 뒤에는 모두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과제들이 한국적 상황과 국민의 공감 위에서 제대로 설정된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론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참여정부의 용기와 방향은 제대로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정책을 평가할 때 결과는 물론 순수한 의도와 열정도 감안해 달라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저는 이 실장으로부터 ‘마음씨 좋고 겸손한 선생님’의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돌팔이 의사’를 통해 암시했듯 환자는 의사의 마음가짐보다는 만족스러운 치료 결과와 높은 실력을 기대합니다. 국민들이 한 나라의 흥망을 좌우하는 정책 담당자들에게 원하는 덕목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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