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이 실장은 주제 발표 이후 짤막한 유머를 던졌습니다.
“한 환자가 의사에게서 치료를 받고 왔는데 병이 낫질 않고 더 심해졌다. 그래서 환자의 부인이 그 돌팔이 의사를 혼내주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환자는 병원에 갔다가 시무룩해서 돌아왔다. 이유를 묻자 그는 ‘병원 문 앞에 의사 뺨을 때리겠다는 환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어 의사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 실장이 느끼는 국정의 무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비유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질의응답이 시작된 뒤에는 답답한 마음이 남았습니다.
서울대 교수들은 현 정부의 정책 실패를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내용은 크게 △청와대 참모진의 자질과 경험 부족 △임기 말기형 권력 누수 △평등과 분배에 대한 지나친 집착 △능력에 비해 과도한 개혁 지향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혼돈 등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 실장은 정부의 5대 정책과제(균형발전, 부동산 안정, 교육 개혁, 여성의 사회 참여, 노사 문제 해결)를 다시 언급했습니다. 또 지금과 같은 혼란은 과제가 완수된 뒤에는 모두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과제들이 한국적 상황과 국민의 공감 위에서 제대로 설정된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론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참여정부의 용기와 방향은 제대로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정책을 평가할 때 결과는 물론 순수한 의도와 열정도 감안해 달라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저는 이 실장으로부터 ‘마음씨 좋고 겸손한 선생님’의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돌팔이 의사’를 통해 암시했듯 환자는 의사의 마음가짐보다는 만족스러운 치료 결과와 높은 실력을 기대합니다. 국민들이 한 나라의 흥망을 좌우하는 정책 담당자들에게 원하는 덕목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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