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방분권 한다며 과세권 빼앗나

  • 입력 2003년 12월 10일 18시 53분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이 지방자치단체의 재산세 과세표준 결정권을 환수하거나 세율 조정권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국무회의에서 보고했다. 내년에 재산세를 최고 7배로 올리겠다는 정부 방침에 지자체가 계속 반발하면 법을 바꿔서라도 강행하겠다는 얘기다. 이는 지방자치의 심각한 후퇴일 뿐 아니라 정부의 신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행위다.

재산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지자체가 정부의 인상안에 반발하는 것은 예견된 일이다. 재산세를 올려 부동산투기를 잡겠다는 정부의 발상 자체가 무리였다. 우선 재산세가 다른 정책수단에 비해 부동산투기 억제효과가 뛰어난지 의문이다. 설령 투기억제 효과가 있다고 해도 실수요자의 피해까지 감안하면 바람직한 정책수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부동산가격 급등에 대해 정책운용을 잘못한 책임을 절감해야 할 정부가 마치 지자체 때문에 투기를 못 잡는 것처럼 몰아붙이는 태도는 온당치 않다. 지자체는 주민의 지방세 부담이 한꺼번에 몇 배씩 늘어나지 않도록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중앙정부의 무리한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자체의 재정 자주권을 축소한다면 ‘행정 쿠데타’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재정 자주권 없는 지방자치는 허울뿐인 자치다. 정부가 세금을 거둬 지자체에 나눠주는 ‘종합부동산세’ 신설 방침에 대해 본란이 우려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허 장관은 종합부동산세를 나눠줄 때 재산세 인상에 반발하는 지자체에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말로는 지방분권시대를 앞당겨 지방자치 천국을 만들듯이 하면서 세금으로 지자체를 길들이겠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지자체의 권리마저 빼앗는 게 지방분권이란 말인가. 무릇 정부정책이란 내용 없는 원론보다 구체적 행위로 평가된다. 지방분권을 조금이라도 진전시키려면 국세 일부를 지방세로 전환하는 조치부터 하루빨리 시행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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