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중은행장은 최근 본보 기자들과 만나 외국자본의 국내 은행산업 진출에 대해 이같이 털어놓았다. 최근 은행권과 산업계에서 확산되는 이 같은 우려가 수치(數値)로도 입증됐다.
한국은행은 21일 내놓은 ‘외국자본의 은행산업 진입영향 및 정책적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외환위기 이후 경영권이 외국자본에 넘어간 은행들이 5년여 만에 기업대출의 비중을 33.3%포인트나 줄인 반면 가계대출은 35.2%포인트나 늘렸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한은 보고서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국내 일반은행(시중은행+지방은행)에서 외국자본의 지분은 직접투자와 간접투자를 합해 38.6%였다. 이는 98년 말(11.7%)보다 26.9%포인트 급증한 것이며 지난해 말(24.9%)보다도 13.7%포인트 늘었다.
이 같은 외국인 지분은 한국처럼 외환위기를 겪은 말레이시아(19%)와 태국(7%)을 크게 웃돌 뿐 아니라 대다수 서구 선진국(4∼19%)보다 크게 높은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8개 시중은행에 대한 지분은 98년 말 12.3%에서 지난해 말 26.7%, 올해 9월 43.4%로 급격히 증가했다.
최대 주주가 외국인이고 이들이 경영에 참여해 실제로 외국자본의 경영지배를 받는 ‘외국계 은행’은 제일(총외국인지분 48.6%) 외환(65.8%) 한미(61.0%) 등 3개 은행으로 이들 은행의 자본은 일반은행 전체자본의 29.5%를 차지하고 있다.
지분 5%가 넘는 외국인 대주주가 있고 외국인 등기이사도 있는 국민(68.4%) 하나은행(28.7%)은 ‘혼합계 은행’, 신한 우리 조흥은행과 지방은행들은 ‘내국계 은행’으로 분류됐다.
외국계 은행들의 기업대출 비중은 98년 말까지 혼합계(47.6%)나 내국계(80.6%)에 비해 높은 82.9%였으나 2003년 9월 말 현재 49.6%로 줄었다. 반면 가계대출 비중은 98년 말 10.4%에서 45.6%로 급증했다.
또 외국계 은행의 자산 가운데 국공채와 통화안정증권 등 ‘안전자산’ 비중은 98년 말 50.1%에서 올 9월 말 현재 67.5%로 17.4%포인트 증가한 반면 회사채, 주식 등 ‘위험자산’비중은 22.3%에서 17.4%로 줄어 전체 금융시장 활성화에 대한 기여도도 낮았다.
한은 분석총괄팀 서영만(徐永晩) 차장은 “현재 수준을 크게 넘는 외국자본의 은행산업 지배는 경제성장 동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면서 “장기적 은행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소유 은행주식 매각은 국내 금융자본의 성장정도와 외국자본의 성격 등을 봐가며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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