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고 그 가운데는 기자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의견도 상당수 있었다.
이들은 기사를 쓴 기자의 ‘의도를 모르겠다’거나 ‘투기꾼을 동정하느냐’식의 비판을 많이 했는데, 이에 대해 해당 기자는 자신의 의도와 기사 뒤에 숨은 뜻을 편지글 형식으로 정리해 네티즌들에게 일일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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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은 기자의 양해를 얻어, 직접 의견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 기사에 높은 관심을 가졌던 다른 네티즌들을 위해서도 편지글을 원본 그대로 싣기로 했다.
인터넷 언론의 가장 큰 장점은 쌍방향 의사소통이다. 기자의 글에 독자들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기자 또한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해볼 수 있다는 것은 인터넷만이 가진 장점이라 생각한다.
이번을 기회로 기자와 네티즌간의 더욱 깊은 교감과 이해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편집자>
▼이철용 기자의 편지 전문▼
‘40대 회사원의 날아간 1억원’ 그후
부동산시장을 취재하고 있는 이철용 기자입니다.
요 며칠 사이 욕 한번 원 없이 먹었습니다. 기자 하면서 평생 들을 욕의 절반은 들은 것 같습니다. 19일자 부동산면(B9면)에 쓴 ‘현장에서/어느 40대 회사원의 날아간 1억’ 기사 때문입니다.
이 기사는 20일 오후 늦게까지 동아닷컴의 머리기사로 실렸습니다. 덕분에 많은 인터넷 이용자들의 눈에 띄었겠죠. 동아닷컴 ‘의견란’에 100건 남짓의 독자의견이 올라왔습니다. 이메일도 40여통 들어왔습니다. 대부분 칭찬이 아니라 비난과 비판이었습니다.
독자들의 의견은 대략 이렇습니다.
첫째, “너, 투기꾼 맞지?”
둘째, “실패한 투기꾼에 대한 동정을 유도하려는 걸 보니, 너 투기꾼 앞잡이구나.”
셋째, “말도 안 되는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 정책을 우격다짐으로 비판하려 드는구나.”
넷째, “너 소설 쓴 거지?”
다섯째, “네가 그런 기사를 쓴 의도가 도대체 뭐냐?”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 답글은 동아일보 경제부의 뉴스레터인 ‘이노블리안즈’를 통해서 뿐아니라 제게 e메일을 주신 분에게도 모두 전달될 것입니다.
답변에 앞서, 제가 쓴 문제의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서울 고덕동에서 한 중개업자한테서 들은 얘기다. 40대 회사원이 8월 초 투자 목적으로 구입한 5억2000만원짜리 재건축 아파트를 12월 초에 도로 팔려고 4억2000만원에 내놓았다. 넉달 만에 1억원을 손해 본 것. 그는 20번 넘게 아파트에 청약을 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그러다가 재건축 아파트 값이 8개월 만에 1억원이나 오르는 걸 보고 과감하게 투자를 결심했다. ‘1억원만 먹고 팔자’고 마음먹었다. 그 물건을 받아놓은 중개업자는 “부동산 경기 부양과 부동산 과열 대책 사이를 군사작전처럼 오락가락했던 부동산정책이 문제다. 무주택우선순위 제도가 계속 유지됐다면 설마 20번에 한 번은 당첨이 안 됐겠느냐. 임대주택이라도 충분히 공급됐다면 그 사람 그렇게 무모하게 투기할 사람은 아니다”고 말했다.”
첫째, “너, 투기꾼이구나” 또는 “너 강남 살지”
=전 한 번도 집을 사본 적이 없습니다. 토지 상가 경매 등 부동산을 한 번도 사거나 판 적이 없습니다. 현재 경기도의 한 도시(신도시도 아닙니다)에 있는 한 아파트에 세 들어 살고 있습니다. 제 부모 형제 가운데 서울에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둘째, “넌 투기꾼의 앞잡이구나.”
=올 여름으로 돌아가 볼까요. 제 취재영역이 증권시장에서 부동산시장으로 바뀌자마자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지금 집 사도 돼?”, “어디 좋은 물건 없어?”…. 고등학교 동창들이 그랬고, 이래저래 만난 취재원도 있었고, 심지어 얼굴 모르는 독자가 전화로 상담을 해오기도 했습니다. 대개는 제가 부동산 담당 기자니까 별 생각 없이 으레 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투자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실제로 나중에 들어보니, 서너 사람은 은행에서 융자내고 전세 끼고 해서 투자를 했습니다. 최근엔 전에 취재원으로 사귀었던 증권사 직원 한 사람과 은행 직원 한 사람이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했다가 상투 잡았다. 어떡하면 좋겠느냐’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제 주변의 분위기는 정말이지 그 땐 그랬습니다. ‘강남 불패’ ‘부동산 불패’를 믿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느냐”는 거였습니다. 부동산 얘기만 나오면 솔깃해했고, ‘나도 한 번 해볼까’하는 유혹에 흔들렸고, ‘그러다 손해 보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망설임 끝에 체념했고, ‘집값이 하루 이틀 사이에 1000만원 올랐다더라’하는 뉴스에 배 아파했습니다. 여러분 주변은 그렇지 않았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지금 ‘투기꾼’으로 비난받는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한테 40대 회사원 얘기를 해준 중개업자도 그랬지만, 저도 이런 사람 참 안쓰러워 보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아는 사람 가운데, 아니 모르더라도,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1억원 잃은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래 싸다 싸. 그게 바로 투기꾼의 말로(末路)야 ㅎㅎㅎ’ 하십니까? ‘쯧쯧, 안 됐어. 내 이 친구 사고 칠까 불안했지, 그렇게 겁이 없으니…. 그래도 설마 했는데, 뭐에 혹했을까?’ 혹시 이러시지 않습니까?
셋째, “말도 안 되는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노무현 정부가 성공한 부동산시장 안정 정책을 우격다짐으로 비판하는구나.”
=제 기사가 40대 회사원의 투자사례 소개에서 부동산 정책 비판으로 넘어가는 부분은 이렇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이 바닥에서 24년째”라는 중개업자는 ‘부양’과 ‘대책’을 오락가락하는 군사작전식 부동산 정책을 나무랐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겨냥한 게 아닙니다. 20여년에 걸쳐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고, 그것도 화끈하게 부양책과 투기대책을 한꺼번에 왕창 쏟아냈던 ‘대한민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중개업자의 소견을, 평소의 제 생각과 일치하기에, 그대로 전달했던 것입니다.
요즘 정부의 주택정책 담당자들은 너나없이 “집값이 더 떨어져야 한다”고 정색하고 말합니다. 3~4년 전에는 어땠는지 아십니까? 정반대였습니다. “경기 침체를 막으려면 부동산경기 부양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당시 한 주택정책 담당자는 “2001년에 무조건 집값을 두 자릿수 상승세로 올려놓겠다”고 공공연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각종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도권 전입자의 일정기간 청약제한(2년) 폐지, 민영주택에 대한 재당첨 제한 폐지, 민영주택 분양시 무주택우선 공급제도 폐지, 분양권 전매 허용, 신규 분양주택 양도소득세 면제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무튼 이런 ‘규제 철폐’의 결과로 2001년 6월경부터 집값은 오름세를 탔습니다. 2002년 접어들면서는 과열 양상이 뚜렷해졌고 온 국민이 부동산열병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그 동안 철폐됐던 규제를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고스란히 되살렸습니다. ‘부동산시장 안정 대책’이라는 이름 하에 말입니다.
저는 정부가 목표 시한을 정해놓고 인위적으로 집값을 띄우려고 애쓰지 않았다면, ‘강남 불패’, ‘부동산 불패’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그토록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투기꾼으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부가 그 뒤에 정반대로 부동산 과열을 일거에 진정시키려고 소나기 대책을 퍼붓지 않았다면, ‘투기꾼’들에게 단 몇 달 만에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의 손실-이를테면 ‘괘씸죄 명목의 벌금’-을 부담지우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봅니다. 부동산 시장이 전체 경기와 맞물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자연스런 순환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정부는 다만 불합리한 시장 심리로 인한 부동산 가격의 지나친 하락과 과도한 상승을 막는 식의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응해왔다면, 아울러 과도한 시세차익을 사회적으로 환수하는 조세 ‘체제’를 갖추고 그 세수(稅收)를 임대주택이든 저렴한 공공분양주택이든 서민층 실수요자를 위한 주택 공급에 활용해왔다면, 자기 재산보다 훨씬 많은 돈을 빌려 무모한 투자를 하는 부화뇌동 투자자, 곧 ‘투기꾼’이 훨씬 더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 그랬지 않았습니까? 정부는 즉흥적인 상황 논리로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했고, 여기에 380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부동자금,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금리, 주식시장 침체, 부동산 투자를 대체할 만한 투자처 부재 등의 요인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투기꾼이 양산된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어쨌든 노무현 정부가 마음먹고 내놓은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은 옳은 방향에서 나온 것이고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않았느냐”고요? 글쎄요, 저는 아직은 결론을 내리기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그 자체는 좋은 일입니다. 즉 부동산 시장을 인위적으로 부양시키거나 우격다짐 식으로 꺾지 않고 시장 체질을 건전한 방향으로 유도하면서 변동성이 적은 시장으로 유도해나가겠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올 여름 이후의 단기과제는 과열된 시장을 식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요즘 시장 흐름을 보건대는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안정대책이 첫 라운드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성공 여부는 아직은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런 평가를 받으려면, 다시 강조하건대, 부동산 가격을 장기적으로 적정 수준으로 안착시켜나가야 합니다. 더 이상 오락가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9·5대책’이나 ‘10·29대책’이 말 그대로 과열 식히기용 특단의 대책이므로 부동산시장이 안정을 찾아가면서 일부는 풀어도 되는, 아니 풀어야 하는 국면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이랬다저랬다 한다”고 비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부동산 가격 안정이나 부동산시장 체질 변화 같은 진정한 목표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총선 등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고 민심수습 목적으로 규제를 풀어버린다면, 실패입니다. 또한 이와 정반대로, 부동산 가격 하락 ‘속도’가 경제 전체적으로 부작용을 낳는 상황으로 가는데도 지금의 엄격한 규제 틀을 그대로 유지해가는 미련한 뚝심을 보인다면, 그것 역시 실패입니다.
넷째, “너 소설 쓴 거지?”
=기자에게는 너무 모욕적인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기자라면 ‘혹 소설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까봐 가급적 익명의 기사를 쓰지 않습니다. 굳이 익명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기사로 전달하는 것은 그 사람의 행적이 기사로 전달하기에 충분한 격(格)과 의의와 전형성을 담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네가 그런 기사를 쓴 의도가 뭐냐?”
=저는 위에서 말씀드린 생각에서 한 평범한 회사원이 투기꾼으로 전락한 과정과 그 결과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가급적 전달자의 판단을, 가공된 메시지를 넣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독자 여러분들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가져주셨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사실 이런 목적을 절반 정도는 이룬 셈입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읽어 주셨으니까요.
하지만 나머지 절반 이상은 실패입니다. 기사로 모든 것을 말해야 하는 기자가 이런 구질구질한 변명의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자괴감을 줍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을 1000자 분량으로 오해를 사지 않고 요령 있게 담아내는 역량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이철용 경제부 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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