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票 얻자고 국민연금 위기 키워서야

  • 입력 2003년 12월 24일 18시 51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심의하기 위한 소위원회를 열었으나 전체회의에 상정조차 못한 채 산회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일부 가입자의 반발과 연금 사각지대 해소 대책 미흡 등의 이유를 들어 조기 처리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민연금 제도를 그대로 두어서는 훗날 국가적 ‘재정(財政) 재앙’을 피하기 어렵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국민연금의 현행 구조를 내버려 두면 2036년에 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2047년에는 기금이 바닥난다. 2050년에는 거둬들이는 돈보다 내줄 돈이 407조원이나 많아진다. 우리 자녀의 두 손에 ‘고성능 빚 시한폭탄’을 쥐여준 셈이다. 더구나 지금의 국민연금심의위원회는 우리나라 1년 예산과 맞먹는 연금을 다루기에는 전문성이 크게 떨어진다. 잘못된 제도를 하루빨리 바로잡지 않으면 현 세대도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국민연금 개혁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진다. 현재는 노후연금을 받는 사람이 108만명이지만 2008년에는 323만명이 되고 이후에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설득해야 할 대상도 많아지고 막무가내로 반발할 가입자도 늘어난다.

정치인들이 무슨 명분을 내세운들 국민연금 개혁에 반대하거나 미루는 속내가 표(票)에 있음을 대다수 국민은 잘 알고 있다. 눈앞의 총선 표 얻자고 재정 위기를 키워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만 탓할 일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 “국민연금 지급액을 깎으면 ‘용돈제도’가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국민이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 ‘용돈제도’로의 개악(改惡)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노 대통령이 국민연금 개혁의 정치적 부담을 야당에 떠넘겼다는 비판을 면하려면 지금이라도 직접 나서 반대론자들과 야당의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당장 위원회를 열어 개정안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총선에서의 작은 이해 때문에 국민연금 위기를 키워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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