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수사결과] 부실기업과 임원들의 도덕적 해이 실태

  • 입력 2003년 12월 26일 15시 12분


검찰이 26일 발표한 공적자금 비리 중간 수사 결과는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사금고'처럼 이용한 부실기업과 그 임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그러나 검찰은 이번에도 부실기업이 지원받은 공적자금 중 일부를 정관계 로비에 사용했다는 의혹 등 정·관계 로비에 대해서는 밝혀낸 것이 없어 전체적으로 수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부실기업주들의 범행=나산그룹 안병균(安秉均·55) 전 회장은 98년 1월 ㈜나산의 부도 이후에도 계열사 자금 290억원을 가족이나 임원이 대주주인 회사에 부동산 경매자금으로 대여하는 방식으로 회삿돈을 횡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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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안씨는 처삼촌 박모씨(67)가 계열사인 나산클레프 법정관리인으로 임명되자 박씨와 공모해 계열사 자금 27억원을 빌려 오피스텔 경락 자금으로 사용하는 등 99~2000년 6개 계열사를 통해 건물 골프장 등 부동산 8건(감정가 1308억원)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뉴코아그룹 김의철(金義徹·60) 전 회장은 계열사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 2865억원을 사기 대출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김 전 회장은 특히 2000년 12월 배당서류를 거짓으로 꾸며 뉴타운산업 대주주인 아들에게 7억원을 불법으로 이익 배당했으며, 뉴타운산업에 근무한 사실이 없는 사위 등에게 2000년 8월부터 같은해 12월까지 이 회사 법인카드를 주고 유흥비 등으로 1억4000만원을 사용토록 했다. 특히 이들이 사용한 금액의 80% 이상은 룸살롱 등 술값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굴지의 제지회사였던 신호그룹 이순국(李淳國·60) 전 회장은 펄프수입 가격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97년 12월~2000년 6월 비자금 36억여원을 조성했고 이중 18억여원을 미국 은행 계좌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김병근 전 신호제지 과장 등 직원 4명은 비자금 조성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이 전 회장을 협박해 3억9000만원을 갈취했고, 비자금을 관리했던 문모(56) 전 사장은 노조 무마비로 사용하겠다며 비자금 2억3000여만원을 받아 개인 생활비 등으로 유용하는 등 오너부터 직원들까지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실기업주들의 재산 은닉=이들은 회사가 부도난 상황에서도 채무 변제를 피할 목적 등으로 회사 부동산이나 개인 재산 등을 가족이나 임원 명의로 은닉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나산의 안 전 회장은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된 나산관광개발 자산인 골프장 회원권 80장(시가 200억원 상당)을 부인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회사에 무상 양도했고 임원 명의로 은닉한 주식 매각 대금 208억원 가운데 72억원을 계열사 증자 자금으로 사용했다.

뉴코아 김 전 회장 역시 부도 이후 계열사에서 소유한 2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 이전을 받은 뒤 다시 경리직원 명의로 14억원 상당의 허위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방법으로 채권 집행을 회피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과 부실기업으로 이어진 부패의 고리를 속 시원히 밝혀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국민의 혈세를 제 돈처럼 탕진한 부실기업의 생존이 정 관계 로비와 관련됐다는 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의 이번 수사 결과 역시 부실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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