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대표적 축산물 도매시장인 서울 성동구 마장동과 송파구 가락동 시장의 분위기는 썰렁했다. 수입쇠고기는 거래가 끊기면서 도매상들이 아예 가게 밖 창고에 넣어두었고 한우 도매상들도 거래물량이 줄고 값이 치솟을 조짐을 보이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예년의 경우 연말부터 설 연휴까지는 추석과 더불어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의 대목. 그러나 올해는 이미 확보되어 있는 물량이 고스란히 재고로 남을 가능성이 커지자 상인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장기화될 우려가 있다는 것.
▽대목 앞두고 직격탄=27일 오전 11시 4000여개의 쇠고기 도매상이 밀집해 있는 마장동 축산물도매시장. 평소 거래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각이지만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는 상인들의 모습만 군데군데 보였다.
수입쇠고기 도매점을 운영하는 조성효씨(45)는 미국산과 호주산 쇠고기를 담은 상자를 아예 가게 앞에 쌓아 놓았다. 다른 가게도 마찬가지. 조씨는 “광우병 파동 이후 수입산은 거래가 전혀 없다”며 “설 대목이 추석과 함께 한 해 장사의 가장 큰 부분인데 뒤통수를 맞아도 심하게 맞았다”고 울상을 지었다.
24년째 도매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신인경씨(50·여)는 “거래처 식당들이 모두 예약을 취소해 재고만 떠안게 됐다”며 한숨을 지었다. 그는 “광우병에 걸린 것은 미국산이지만 소비자들은 미국산이든 호주산이든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며 “‘수입소나 한우나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퍼지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한우 거래도 비상=비슷한 시간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내 한우전문 서울축산물공판장. 쇠고리에 걸린 한우 반 마리가 10초 간격으로 경매장 앞을 지나갔지만 거래는 별로 성사되지 않았다.
한우 값이 급등한 데다 출하물량이 너무 적기 때문. 평상시 경매사가 흥을 돋우기 위해 “아싸, 아싸”라고 지르는 추임새도 들리지 않았고, 거래단말기를 두드리는 도매상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도매상들은 “값이 오르자 축산업자들이 출하를 늦추는 바람에 수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 식품회사에 납품할 특상급 소만 찾는다는 도매상 신모씨는 “거세 한우가 너무 적게 들어와 세 마리밖에 사지 못했다”며 “kg당 단가도 어제보다 700∼1000원 가까이 올랐다”고 말했다.
경매사 윤병인씨는 “광우병 파동 이후 한우 가격이 계속 오름세”라며 “크리스마스 이전보다 kg당 단가가 1500원 가까이 오른 등급도 있다”고 말했다.
▽끼워팔기와 장기화 우려=상인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막을 경우 공급이 급격히 줄어들어 정육점 등에서 재고물량을 한우로 둔갑시켜 판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내 쇠고기시장에서 미국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44%에 이르기 때문.
중간도매상 양모씨(56)는 “국내 유통량의 절반 가까운 미국산이 유통되지 않고 한우 값이 계속 오르면 고기를 속여 파는 정육점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결국 쇠고기 전체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식탁에서 쇠고기가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소비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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