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 400만개 오류 파장]금융실명제에 큰 구멍

  • 입력 2004년 1월 6일 18시 05분


금융회사에 허위 주민등록번호로 개설된 약 400만개의 금융계좌가 있다는 사실은 금융실명제와 금융소득종합과세에 큰 구멍이 뚫려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이번에 주민등록번호 오류 계좌 현황을 발표한 것은 사태의 마무리가 아니라 시작이다. 오류 시정과 세금 추징 등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구멍 뚫린 실명제와 금융소득종합과세제도=고액자산가 A씨가 입력 착오든 의도적이든 잘못된 주민등록번호를 갖고 모 은행계좌에 10억원을 예치했고 연간 금융소득이 4000만원이 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라고 가정해 보자.

하지만 국세청은 원천적으로 A씨의 10억원 계좌에서 발생한 이자소득에 대해서 종합과세를 할 수가 없다. 국세청은 국세청 전산망에 입력된 주민번호와 일치하는 주민번호를 가진 금융계좌에 대해서만 종합과세를 할 수 있는데 서로 주민번호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금융소득종합과세의 구멍을 없애기 위한 사전 장치로 1992년 도입된 제도가 금융실명제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계좌주의 실명(實名)과 주민등록번호를 확인 대조한 뒤 계좌를 만들어 주라는 이 제도는 금융회사와 금융감독 당국의 허술한 관리에 10여년간 큰 구멍이 뚫려 있었던 셈이다.

▽확인시스템 갖추지 못한 금융회사=은행의 이 같은 허술한 주민등록번호 관리는 인터넷에서조차 보편화된 주민등록확인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인터넷에서 회원 가입 때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존재하지 않는 번호’ ‘이미 사용 중인 번호’라는 메시지가 떠서 잘못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은행 창구에서는 고객이 작성한 계좌개설신청서에 기재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할 뿐 번호가 ‘행정전산망’이나 ‘국세청전산망’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시스템이 없다.

은행 창구 직원도 고객이 제시한 주민등록증과 서류에 기재된 번호를 비교해야 하지만 실제 창구에서는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용화(鄭庸和) 금감원 검사총괄국장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앞으로 이처럼 잘못된 주민등록번호가 입력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파장이 예상되는 후속작업=앞으로 파장이 예상되는 부분은 398만여개 주민등록번호 오류 계좌 중에 어느 정도가 위·변조 계좌이며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회피한 계좌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현재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 국장은 “2월까지 금융기관에 확인작업을 해 정리하도록 지시했다”며 “위·변조 및 가공계좌에 대해서는 거래 중단과 국세청 통보 등의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국세청도 금융기관이 주민등록번호 오류를 정정하면 곧바로 세금 추징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혀 파장이 예상된다.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

차지완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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