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를 기회로
8일 프로토 자동차 공장.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스포츠카의 제작 공장치곤 궁색해 보인다. 건물 뒤편에는 자동차 뼈대와 차량 형태를 한 찰흙 덩이들이 어지럽게 쌓여있어 되레 폐차장 분위기가 나는 이 곳이 ‘스피라’의 산실이다.
첫 작품 ‘스피라’를 향한 꿈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위기에 처했던 99년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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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처음에는 자동차 용품업체로 출발해 전시차 주문제작 등 디자인 모델 용역을 맡아왔다. 나름대로 디자인에는 자신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8년간 디자인 공부를 하고 돌아와 쌍용과 기아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로도 근무했던 김사장을 비롯해 모두들 상당한 실력자들이다. 틈틈이 완성차 메이커의 콘셉트카 제작이나 리모델링 작업을 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던 중 외환위기 때 경영난에 처해 본사 건물마저 처분해야 했다. 본사가 보이는 근처 언덕배기에 가건물을 지어 이사한 뒤 김 사장은 오래된 꿈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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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카로체리아(Carrozzeria·디자인 능력을 갖춘 자동차 소량 제작사)가 되고 싶었죠. 물러설 곳도 없는 위기 상황에서 더 이상 꿈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꿈에 그리던 전통 스포츠카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스포츠카의 생명인 스피드를 내려면 날렵한 차체와 경량화가 핵심. 미드십 방식으로 차체를 일반 승용차보다 30cm나 낮추고, 원통형 알루미늄 파이프를 용접해 차체를 직접 만들어 차량 무게를 줄였다. 문제는 디자인.
일부 직원들은 “유연하게 미끄러지는 유선형이 미래의 콘셉트”라며 ‘대롱 끝에서 떨어지는 호리병 모양의 물방울’ 디자인을 주장했다. 그러나 시장을 의식해야 한다는 반론에 부닥쳤다. 결국 디자인을 총괄하는 최지선 이사(40)는 ‘미래지향적인 최첨단 스타일’에 대한 아쉬움을 접고 ‘안정성’에 손을 들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라’는 날렵한 몸매에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 땅에 바짝 엎드려 있는 ‘보기 드문’ 디자인. 자동차가 완성되자 주변 반응은 뜨거웠다.
○"자동차가 곧 삶"
프로토 자동차 사무실의 어지간한 소품은 모두 자동차 부품이다. 자동차 모양의 전화기는 기본이고 재떨이는 자동차 엔진 피스톤, 책상 손잡이는 자동차 문손잡이로 돼있다. 책상 먼지 쓸어 담을 때는 차량용 와이퍼를 쓴다.
창업 멤버인 허윤재 과장의 집 화장실 변기는 페라리의 좌석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변기 물통은 자동차 경기장처럼 꾸몄다. 아이가 있는 직원들 집에는 자동차 모양의 침대가 있다.
김 사장은 중학생 때 을지로 주변의 오토바이 가게를 돌아다니며 엔진의 원리를 이해한답시고 고물 오토바이를 샀다가 부모님께 혼쭐난 적도 있다. 현대, 쌍용 등에서 자동차 디자인으로 잔뼈가 굵은 최 이사는 그의 아내다.
시제작팀의 김대중 대리는 한때 정비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기술을 익혔다.
모델팀의 최준수 대리가 주축이 된 모형자동차 동호회는 주말이면 직원과 가족 모두가 참가해 모의 자동차 경주를 연다. “경주를 하다보면 차체의 움직임이나 디자인의 실용적 측면 등을 생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란다.
모두들 둘째가라 하면 서러워할 정도로 자동차 마니아임을 자처한다. 디자인팀의 이기원씨는 “우리들이 어렸을 때부터 수집한 외국 자동차 잡지를 다 모으면 전문서적 도서관쯤은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프로토는 올여름 울산에 연간 500대를 조립할 수 있는 공장 부지를 확정하면 국내 시장에도 ‘국산 수제 스포츠카‘를 선보일 계획이다. 김 사장은 “에너지가 재충전되는 내년쯤 공식적인 두 번째 스포츠카를 내놓을 계획”이라면서 “보다 과감한 스타일로 시장의 판도를 바꿔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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