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금융정보 발가벗겨진다…투기-세금체납자 일괄조회 추진

  • 입력 2004년 1월 15일 17시 51분


정부가 금융계좌나 현금 금융거래 명세 등 개인 금융정보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금융실명제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조회 요건이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재정경제부, 국세청 등 관계 당국이 조사 권한을 남용할 소지도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행정 편의주의’란 지적도 적지 않다.

▽개인 금융정보는 정부 손안에=정부는 공평과세와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해 올 7월부터 부동산 투기 혐의자와 세금 체납자가 개설한 각종 금융계좌를 국세청 등 관계 당국이 금융회사 본점을 통해 일괄적으로 뒤질 수 있도록 ‘금융 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금융실명법) 시행령을 개정할 방침이다.

또 불법 금융거래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특정 금융거래 정보 보고 및 이용법 시행령’을 개정해 앞으로 2000만원 이상 고액 거래에 대해서는 금융기관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했다. 현재는 5000만원 이상 거래만 신고 대상이다.

이와 함께 고액 체납자 명단을 공개하고 민간 신용정보회사들이 보유한 개인 고객에 대한 금융정보를 금융회사나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부작용 클 듯=전문가들은 대체로 정부의 개인 금융정보 파악이 공평 과세나 부동산 투기 예방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조사 기준이나 확보한 정보를 다른 곳에 이용할 수 없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오히려 부작용의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경고한다.

인천대 경영학부 홍기용(洪起用) 교수는 “국세청장이 부동산 투기혐의에 대한 판단을 하고 영장 없이 자금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 자체가 정보 남용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발표한 금융계좌 일괄 조회 기준에 ‘세금 탈루 혐의가 높은 경우’ 등 애매한 표현이 많아 조사권을 자의적으로 휘두를 여지가 많은 만큼 국민이 납득할 만한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

정부가 부동산 가격 폭등이라는 ‘비상 상황’을 이용해 ‘은근슬쩍’ 권한을 확대한 다음 권력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국조세연구원 현진권(玄鎭權) 연구위원은 “정부가 모든 금융정보를 파악하면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며 “특히 국세청장의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재정경제부나 청와대의 권력 수단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음성적인 금융거래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좀 더 지능적인 명의신탁을 하거나 국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

법무법인 을지 소속 차흥권(車興權) 변호사는 “정부가 노출된 금융거래 부분에 대해 세금으로 이윤을 환수하겠다고 하면 음성적 거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차지완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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