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당하느니 차라리 안하는게…"…사외이사 지각변동

  • 입력 2004년 1월 25일 17시 27분


한 코스닥 등록업체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던 교수 A씨는 최근 사외이사직을 사임했다.

회사 돈을 대주주에게 시중금리보다 싼 이자로 빌려주는 등 법적으로 문제될 수 있는 행위를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A씨는 “3000만원가량 되는 사외이사 연봉을 받으려다 그 액수의 수십배 되는 거액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며 “그럴 바에야 안하는 게 낫다”고 털어놨다.

최근 사외이사를 기피하거나, 하더라도 종전의 ‘거수기’ 역할을 거부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집단소송제 도입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책임지기 싫다’=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상장 및 등록기업 사외이사는 모두 629명으로 전체의 29.3%에 이른다. 집단소송제 도입 등 투명경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면서 사외이사를 기피하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증권가에서는 보고 있다.

한 중소기업의 사외이사를 맡았던 회계사 B씨는 작년 말 사외이사직을 포기했다. ‘개인 업무가 바쁘다’는 이유를 댔지만 부실한 회사경영 및 현안마다 이사회의 동의를 요구하는 경영진의 암묵적인 강요가 껄끄러웠던 점도 작용했다. 그는 “주주의 이익에 어긋나는 잘못된 결정에 ‘동참’했다가 각종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점이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 상장기업의 사외이사직을 맡아온 변호사 C씨도 “앞으로는 개인 업무보다 회사 관련 서류를 살펴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들 것 같다”며 올해 사외이사를 그만둘 뜻을 밝혔다.

▽사외이사하려면 ‘확실히’=국민은행은 올해 초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였던 LG카드 지원방안을 놓고 사외이사들을 간담회 형식으로 소집했다. 사외이사들은 16개 채권금융기관의 LG카드 공동 인수건에 대해 “시장이 좋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해 김정태 행장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사외이사의 역할이 ‘거수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과거와는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외이사의 지나친 ‘몸 사리기’에 대해 법률전문가들은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사외이사들이 집단소송의 피고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집단소송제는 소송의 대상행위를 분식, 주가조작, 허위공시 등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선웅(金善雄)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은 “집단소송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사외이사를 기피하는 사람이 생기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투명경영을 위한 이사회 활동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장 및 등록법인 사외이사들의 직업별 분포 현황
구 분거래소코스닥합계
인원(명)구성비(%)인원(명)구성비(%)인원(명)구성비(%)
경영인67047.832743.899746.4
교수27119.316221.743320.2
변호사14210.1709.42129.9
회계사·세무사1087.7699.21778.2
연구원463.3121.6582.7
공무원382.7131.7512.4
언론인171.2172.3341.6
기타1107.87610.21868.7
합계1,402100.0746100.02,148100.0
2003년 9월 말 현재. 자료:한국상장회사협의회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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