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고급화"-LG "기술혁신"…전자제품 '별들의 전쟁' 재연

  • 입력 2004년 1월 26일 18시 31분


국내 생활가전 분야의 영원한 맞수 LG전자와 삼성전자가 가전제품 시장을 둘러싼 한판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반도체와 휴대전화 사업으로 수익 구조를 탄탄히 갖춘 삼성전자가 상대적으로 뒤진 생활가전 분야를 추스르겠다며 도전에 나섰다. 최고경영자인 윤종용(尹鍾龍) 부회장이 생활가전 분야 ‘총괄’직을 겸임한 것도 이 때문이다. LG전자에는 가전분야의 혁신을 주도하며 최고경영자에 오른 김쌍수(金雙秀) 부회장이 버티고 있다.

이로써 1980년대 후반 벌였던 LG전자(당시 금성사)와 삼성전자 간의 ‘별들의 전쟁’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 성적은 LG전자가 우수=LG전자의 작년 생활가전 매출은 삼성전자를 60%가량 앞선다. 또 LG는 꾸준히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숫자로 나타나는 실적에서는 불리하지만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고급 가전 시장에 승부를 걸고 있다”고 설명한다. 고급 가전제품이 새로 발붙이기 어렵다는 영국에서 양문형 냉장고가 세계적인 가전업체인 일렉트로룩스, 월풀, 제너럴일렉트릭(GE)을 모두 제치고 3년 만에 시장을 장악한 사례를 대표적인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고급 가전제품에 주력하기는 마찬가지”라며 “2001년과 2002년 하반기에 각각 미국 시장에 진출한 양문형 냉장고와 트롬세탁기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한번의 ‘스타워즈’=1958년 설립된 금성사는 1987년까지 약 30년간 가전제품의 대명사였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문구가 유명하다.

그러나 1987년경 삼성전자가 ‘별들의 전쟁’으로까지 묘사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탤런트 최진실씨와 김창숙씨가 삼성전자의 모델로 기용돼 활약한 것도 이 ‘전쟁’ 와중이었다. 삼성전자는 LG전자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당시 LG제품에 대한 선호가 높은 장년층 대신 젊은층을 집중 공략해 시장에서 우위를 점했다.

같은 시기 LG전자는 노조의 파업(1987년)으로 두 달간 제품을 출하하지 못하는 등 곡절을 겪었다.

▽고급 가전 시장이 승부처=두 회사 모두 로봇 청소기, 인터넷 냉장고, 공기청정기능 에어컨, 양문형 냉장고, 드럼 세탁기 같은 고급 가전에 승부를 걸고 있어 앞으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LG전자는 여기에 ‘혁신’이라는 무기를 갖췄다. ‘5% 개선은 안 돼도 30%는 가능’함을 몸소 보여준 김 부회장이 그 혁신의 중심에 있다. 백색가전에서 혁신으로 올린 성과를 디지털 TV나 휴대전화로 확대해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신개념 제품 개발을 위해 연구개발 인력을 채용인원의 70%에서 90%까지 높인다는 방침도 새로 세웠다.

삼성전자 윤 부회장도 최근 “저가품은 많이 팔아봐야 기업 이미지만 손상시킨다”며 계속 프리미엄 전략을 추진할 것임을 공언했다. 이에 발맞춰 기존 대리점을 고급화하는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고 연구부서를 격상시킨 생활가전연구소를 설립해 외환위기 당시 잠시 흐트러졌던 연구개발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LG투자증권의 구희진 연구원은 “두 회사의 격돌이 출혈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특히 중견 가전업체의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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