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노동시장 유연화…' 비정규직 노사 '윈-윈' 해법

  • 입력 2004년 1월 30일 17시 42분


2003년 11월 비정규직의 차별 철폐를 요구하기 위해 서울 대학로에 모인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들.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동복지’의 저자들은 비정규직 차별제한 제도를 갖춘 서유럽의 복지국가 전통, 피고용자 모두를 가족으로 대하는 일본의 기업문화 등이 한국사회의 선진적 노사관계 마련에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2003년 11월 비정규직의 차별 철폐를 요구하기 위해 서울 대학로에 모인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들.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동복지’의 저자들은 비정규직 차별제한 제도를 갖춘 서유럽의 복지국가 전통, 피고용자 모두를 가족으로 대하는 일본의 기업문화 등이 한국사회의 선진적 노사관계 마련에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동복지/정이환 외 지음/477쪽 1만7000원 인간과복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시장개편으로 비정규직 노동이 확대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익숙해진 지도 어느덧 6년이 흘렀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기 중소기업과 하청기업, 사내하청에 집중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특권을 누리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이기적이라고 비난해 파란을 일으켰다. 한편 재계는 재계대로 ‘정규직 노조의 고임금 이기주의’ 때문에 기업들이 국내투자를 기피해 산업공동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청년실업, ‘고용 없는 성장’, 일자리 감소 등이 경제 현안으로 부각된 최근 들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비정규직 직종에서의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정규직의 임금동결이 선행돼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민주노총은 정부와 재계의 이런 주장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반박한다. 논쟁의 한편에서 이미 몇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별반대를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정규직 노동 문제는 이처럼 한국사회의 모순과 고민을 이해하는 핵심 주제가 됐지만,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먼저 국내 비정규직 노동의 규모부터가 논쟁의 대상이다. 55.7%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27%에 불과하다는 노동부의 통계도 있다. 그런데 이런 통계적 혼란의 배경에는 개념적 혼란이 있다. 비슷한 혼란은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도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우선 비정규직 노동의 개념을 보다 현실에 맞게 정의하기 위해 수년간 국내외에서 진행된 비정규직 논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 새로운 제안을 더한다.

정이환 교수(서울산업대·사회학)는 고용형태에 따른 전형·비전형 노동과 고용지위에 따른 정규·비정규 노동의 개념으로 분류를 이중화할 것을 제안한다. 외환위기를 경과하면서 비정규 노동은 오히려 전체 임금노동자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전형적인 고용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 분류를 따를 경우 비정규직은 임노동자의 52%, 비전형 노동은 27% 이상으로 추산된다.

저자들은 문헌조사뿐 아니라 방문조사와 관련자 인터뷰를 통해 유럽, 일본, 미국의 비정규직 실태와 보호정책을 생생하게 파악함으로써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정책대안 논의에 많은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정규직의 절반밖에 안되는 임금 등 경제적, 사회적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한국의 비정규직에 비해 서유럽의 비정규직은 차별제한 입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 또 한국과 달리 일본에는 ‘자발적’ 비정규직이 많다는 사실, 그리고 ‘만족해하는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배경에는 피고용자 모두를 가족처럼 대하는 일본기업들의 ‘동아시아적’ 기업문화가 존재한다는 지적에도 귀 기울일 만하다.

외환위기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만을 추종해온 한국 현실에서는 비정규직 일자리란 구직활동에 지친 청년 실업자들이 어쩔 수 없어 마지막으로 찾는 생계수단일 수밖에 없다.

‘동북아 허브’ 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이 그 구상에 걸맞은 ‘동아시아적’ 고용관계, 나아가 선진적인 새로운 ‘동아시아 자본주의‘ 모델을 창출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몽상에 불과한 것일까? 이 책은 새로운 선진적 노사관계를 지향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체계적 조사와 연구 및 정책제안을 담고 있다.

정승일 국민대 강사·경제학 sijeong11@hana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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