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추억의 뉴욕제과’ 부활의 노래

  • 입력 2004년 2월 5일 16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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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뉴욕제과에서 만나자.’1970, 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뉴욕제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장소였다. 단지 빵만 먹는 게 아니라 꿈과 낭만, 풋풋한 사랑을 키워가던 곳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뉴욕제과는 ‘랜드마크’로서의 명성만 남았을 뿐 ‘빵집’으로서의 존재는 희미해졌다. 이 상호를 딴 ‘뉴욕제과’들이 전국에 늘어갔지만 정작 본사는 다른 외식산업에 밀려 98년 최종부도가 났다. 지금은 제3자들에 의해 점포별로 독립 운영되고 있다.》

그로부터 6년. 창업주 고 김봉룡씨의 외손자들이 ‘빵집의 화려한 부활’을 외치고 있다. 경기 고양시 행신동에서 페이스트리 전문점 ‘웨스트 진(031-938-0248)’과 분당에서 케이크 전문점 ‘밀(031-713-9323)’을 운영하는 김서영(41) 준영씨(32) 형제다.

‘뉴욕 베이커리 인 서울’을 꿈꾸는 김서영(오른쪽) 준영씨 형제가 뉴욕제과의 창업주 고 김봉룡씨의 사진 아래서 제빵 레서피를 들여다보고 있다.이종승기자urisesang@donga.com

미국에서 4년간 제빵기술을 배우다가 뉴욕제과가 부도나던 해에 귀국해 시작했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것일까. 이들의 독특한 빵 맛은 입소문을 타고 알려져 서울 강남이나 목동 등 멀리에서까지 이들 빵집을 찾는다. 연간 매출액은 10억여원.

‘뉴욕베이커리 인 서울’을 꿈꾸는 뉴욕제과 3세대 이야기.

● 혹독한 제빵 수업

옛 뉴욕제과가 서울에서는 명맥이 끊겼다고는 하지만 창업주의 장남인 김정찬씨(59)가 미국에서 가업을 잇고 있다. 67년 도미해 제빵사가 된 그는 현재 미국 샌디애고 지역 60여개 컨트리클럽과 20여개 호텔에 단독으로 빵을 공급한다. 공장 직원이 120명이나 되고 주문이 밀려 24시간 풀가동한다.

94년 직장을 다니던 서영씨와 학교를 갓 졸업한 준영씨 형제는 외삼촌 김씨를 찾아 미국으로 간다. 어릴 때부터 빵을 즐겨 먹었으니 빵 만드는 일만큼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외삼촌의 빵공장에서는 제빵 기술보다는 혹독한 기초체력 훈련을 먼저 배워야 했다. 오전 2시에 일어나 오후 10시에 퇴근하는 강행군이 6개월여 동안 계속됐다. 주야 2교대로 돌아가는 시스템이었지만 이들과는 무관했다. 말도 안 통하는 상황에서 멕시코인 노동자들과 부대껴야 했다. 힘든 걸 알아야 효율성도 생기고 더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 외삼촌의 지론이었다.

“한번은 오전 6시에 일어났다가 몇 달 동안 공장 바닥청소를 했던 적도 있죠. 그 시간이면 빵공장의 오전 작업은 다 끝나거든요. 아직도 아침이면 외삼촌 고함소리가 들리는 듯해요.” 서영씨의 말이다.

이런 ‘하드 트레이닝’은 미국에서 화제가 돼 샌디애고 지역신문에도 소개됐다. 가업을 잇기 위해 기술을 배우러 왔다는 얘기가 알려지자 두 형제는 더 이상 투정을 부릴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체력이 다져지자 외삼촌은 “더 많은 기술과 트렌드를 익히라”며 유학을 권했다. 서영씨는 유럽 제빵제과전문학교 등에서 페이스트리를, 준영씨는 미국 유명 호텔에서 케이크를 배웠다.

준영씨는 애나하임 힐튼 타워호텔 베이커리에서 보통 7∼8년 걸린다는 헤드 베이커 자격을 1년 만에 받기도 했다.

“밤낮없이 연습하던 훈련이 빛을 보던 순간이었죠. 남들이 한 시간에 5, 6개밖에 못하던 케이크 장식을 저는 30개씩 해내곤 했으니까요.”

● 뉴욕 베이커리 인 서울

이들이 98년 한국으로 돌아와 ‘웨스트 진’을 연 뒤 처음 6개월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서영씨는 “이윤보다는 사람을 남기라는 외삼촌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어려운 경영 속에서도 재료와 기술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버터 하나를 써도 미국에서 수입해온 최고급만을 쓴다. 값비싼 피컨도 아끼지 않고 넣어 다른 빵집에서는 따라 할 수도 없다. 우유나 계란 등 기본 재료도 최상품만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다.

바로 이것이 경쟁력이 됐다. 좋은 재료를 쓰면 가장 먼저 알아주는 것이 손님이다. 여기서 만드는 페이스트리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살아 있다는 게 단골손님들의 평가다.

또 화려한 매장을 꾸미는 것보다 좋은 작업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매장은 8평 남짓하지만 직원 10여명이 일하는 공장은 160여 평이나 된다. 직원들이 연구개발을 할 수 있도록 세미나와 연수 프로그램도 수시로 마련한다.

준영씨가 ‘웨스트 진’에서 독립해 지난해 분당에서 시작한 ‘밀’은 커피와 케이크를 즐길 수 있는 델리숍 스타일이다.

그의 꿈은 한국식 빵의 개발. 할아버지 세대가 시작한 단팥빵이나 곰보빵은 일본에서 시작된 빵이다. 이제 그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우리의 빵’을 만들겠다는 의욕에 넘친다.

2000년 전미 호텔 케이크 콘테스트에서 ‘올해의 케이크’로 뽑힌 ‘패션 프루츠’나 최근 개발해 고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팥무스’ 케이크는 그런 도전정신의 결과다.

서영 준영씨 형제는 지난해 말 ‘엘리게이트’라는 빵으로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파이에 뉴멕시코산 피컨 너트를 얹어 ‘악어 등’처럼 생긴 이 빵은 얇은 파이 반죽 42겹을 5mm 두께로 구워낸 것이 특징. 외삼촌에게 배운 제빵 기술을 토대로 한국 제빵사에 도전장을 낸 순간이었다.

준영씨는 “할아버지가 시작했던 뉴욕제과처럼 형과 함께 한 층에는 베이커리를, 다른 층에는 토털 델리숍을 운영하고 싶다”며 벽 한쪽에 걸린, 자신과 삼촌의 이야기가 실린 미국 지역신문 기사의 표구를 바라봤다.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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