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미리 짓고 분양하는 ‘주택 후분양제’가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되는 데다 서울시가 마포구 상암지구 아파트의 건설원가를 공개함으로써 건설업체들은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건설업체의 금융부담이 늘어나 자금력이 취약한 일부 건설업체의 줄도산이 우려된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설원가 공개가 민간업체에까지 강제될 경우 건설업계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궁에 빠져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소비자들은 원가공개가 궁극적으로 집값 안정과 분양가 인하로 이어질 것이라며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혹한기에 들어간 건설업계=건설업계가 체감하는 건설경기는 최악의 수준이다. 5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월 건설기업경기 실사지수는 53.3을 기록, 전달(78.7)에 비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는 건산연이 경기실사지수 조사를 시작한 1998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표 참조)
건산연 백성준 책임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쏟아진 각종 부동산 규제대책으로 건설경기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면서 “통상 연초는 계절적 비수기이기 때문에 체감지수가 하락하지만 이번 조사결과는 건설업체가 훨씬 심각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특히 후분양제 본격 시행을 앞둔 건설업계의 속마음은 편치 않다. 후분양제 하에서는 부지 매입부터 완공까지 드는 모든 비용을 건설업체가 충당해야 하기 때문.
주택건설 자금 중 자기자본 비율이 30% 남짓한 상황에서 업체들이 의존할 것은 금융권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다. 하지만 사업전망이 불투명한 건설업계의 속성상 수익성 있는 사업에 무담보로 자금을 대주는 PF는 요원한 일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건설사들은 사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재무구조가 취약한 상당수 업체들은 도산할 수 있다는 것.
후분양제 도입이 주택공급량 감소와 분양가 인상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지적도 있다.
D건설의 한 임원은 “주택사업은 10개 사업을 잘해도 1개 사업이 망가지면 회사가 휘청할 정도로 위험이 많다”면서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보수적이고 신중한 사업검토를 할 수밖에 없어 단기적으로는 공급량이 줄고 분양가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시민단체의 분양원가 공개 요구에 대해서도 건설업계는 답답하다는 입장.
W건설 관계자는 “분양원가가 공개되면 기업마다 이익을 비슷한 비율로 맞출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주택품질의 하향 평준화로 이어진다”면서 “부가가치를 높이지 못하는 사업으로는 차별화의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에게는 이득일까=반면 소비자들은 주택시장이 공급자 위주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기존 선분양제도는 소비자가 모델하우스만 둘러보고 분양가의 80%를 선불하는 시스템. 먼저 비용을 지불하는 데 따른 자금 위험부담이나 건설업체가 부도날 경우 입주 지연 등 건설업체의 사업 위험 부담을 소비자가 나눠 져야 했다.
일각에서는 후분양제 도입이 궁극적으로 집값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주택경기가 상승기일 때는 기존 주택가격이 오르면 분양수요가 늘고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기존 주택가격을 끌어올린다. 하강기 때는 반대의 경로를 밟는다. 경기진폭을 크게 하는 ‘되먹이기’ 효과가 있는 것.
하지만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건설업체들이 현재의 주택경기가 아닌 2, 3년 이후의 경기를 예측하고 건설물량을 조절하기 때문에 선분양제의 되먹이기 효과가 완화된다는 것.
부동산 정보업체 닥터아파트 오윤섭 대표는 “분양권 전매가 아예 사라짐으로써 투기수요가 사라지고 실수요자 위주로 분양시장이 재편되는 것도 후분양제의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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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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