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북스]고승철이 뽑은 베스트…'오사카 상인들'

  • 입력 2004년 2월 6일 17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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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상인들/홍하상 지음/324쪽 1만3000원 효형출판사

장사꾼…. 이 말을 들으면 당사자들은 가슴이 아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리라. 깔보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지 않는가.

상인(商人)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오랜 관념 탓에 상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았는가.

지금도 한국에는 상인들이 수백만명이나 되고 이들의 역할이 엄청나게 중요한데도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어줄 책이 ‘오사카 상인들’이다.

오사카는 일본 경제의 중심 도시. 몇백년 전통을 가진 점포들이 수두룩하다. 그 가게 가운데 번듯한 기업으로 발전한 곳도 적잖다. 공고구미(金剛組)란 건축회사는 586년에 문을 연 세계 최고(最古)의 기업. 이들 가게와 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창의성과 추진력이 뛰어난 오사카 상인들이다.

오사카란 도시에 매료된 저자가 14년 동안 오사카를 수십번 방문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한 책이다. 뒷골목의 조그만 점포에 대한 풍경도 생생하게 묘사돼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통 깊은 일본 가게 앞에는 상호가 그려진 ‘노렌(暖簾)’이란 무명천이 치렁치렁 걸려 있다. 노렌은 신용과 자부심의 상징이다. 오사카 상인들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노렌은 지킨다”고 다짐한다. 자신이 만든 음식이나 상품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품질을 지킨다는 뜻이다.

오사카에서는 과거에 상사농공(商士農工)의 순으로 상인이 무사 위에 있었다고 한다. 지방제후인 번주(藩主)들은 상인들에게서 거액을 빌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제때 갚지 않으면 추가 자금은 한 푼도 안 빌려주었다. 번주는 상인에게 사과하고 잔치를 베풀어 아량을 구하곤 했단다. ‘상인이 화를 내면 천하의 제후도 놀란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오사카 상인들의 특징을 요약하면 뛰어난 원가 계산 능력, 고객 중심의 서비스 정신, 근검절약, 평소의 꾸준한 공부 등이다.

1724년에 세워진 상인학교 ‘회덕당’은 실용성 높은 지식을 가르쳤다. 회덕당 졸업생 가운데 대학자로 성장한 이들도 수두룩했다. 지금은 오사카대 문학부의 ‘회덕당 센터’가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오사카 상인의 간판 인물은 마쓰시타그룹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 그는 17세 때 전등회사 직공으로 들어가 기술을 익힌 뒤 공장을 차려 성공의 씨앗을 심었다.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그는 성공의 비결에 대해, “가난했기에 직공 등으로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몸이 약했기에 운동을 부지런히 해 건강해졌고,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기에 세상 사람들을 모두 스승으로 여기며 언제나 공부했다”고 털어놓았다. 약점을 장점으로 만든 대표적 사례다. 그는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정신적 지주의 한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면 오사카 상인이 갖는 긍지가 대단함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상인들과 기업인들이여, 자부심을 가지시라. 귀하들은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산타클로스가 아닌가. 물론 공짜로 주지 않는다는 점에선 진짜 산타클로스와는 다르지만….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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