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 사라진 가계부…20여년 가계부써온 서민주부의 하소연

  • 입력 2004년 2월 8일 17시 45분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15년째 살고 있는 주부 J씨(47). 10평이 조금 넘는 전셋집에서 많지 않은 남편 월급에 의존해 네 식구가 생활하는 자칭 ‘서민’이다. 가게에서 물건 하나를 살 때도 가격을 꼼꼼히 따져본다는 그는 20여년간 계속해온 가계부 쓰기가 어느새 몸에 배어 콩나물 500원어치를 사더라도 반드시 기록으로 남긴다. J씨는 요즘 가계부를 넘겨볼 때마다 오른 물가를 실감한다고 말한다.》

“물가가 너무 올라 웬만하면 장보러 안 갑니다. 가면 자꾸 사게 되니까요. 무조건 아껴야죠.”

올해 1월과 지난해 1월 가계부 내용을 살펴보면 결코 엄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난해 3300원이던 목욕비가 3600원으로 300원(9.1%) 올랐고, 배는 개당 1000원에서 2000원으로 배로 뛰었다. 지난해 4600원이었던 돼지고기 한 근 값은 6000원으로 30.4% 인상됐다. 이 밖에 쌀 20kg이 4만5000원에서 5만5000원으로 22.2% 뛴 것을 비롯해 라면 우유 무 고등어 화장품 등도 적지 않게 올랐다. 청양고추 오이 콩나물 정도가 오르지 않은 품목들이다.

J씨는 가계부에 적힌 갈치와 홍합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자 “갈치는 같은 5000원어치라도 올해는 지난해보다 적게 준다”며 “홍합도 값은 1000원으로 같지만 양은 지난해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J씨만 물가 인상을 느끼는 게 아니다.

최근 통계청은 1월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1월보다 3.4%, 일상생활과 밀접한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4.3% 올랐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부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발표된 수치보다 훨씬 높다. 물가 통계에는 주부들이 사지 않은 품목들까지 포함돼 상대적으로 더 오르기 마련인 장바구니 물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생필품 가격 인상 바람은 올해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식용유(1.8L)가 3100∼3400원대에서 300원 정도 올라 3400∼3700원대가 됐고 농심 신라면은 520원에서 550원으로 올랐다. 우동 등 면류 제품과 참치 캔 등의 가격도 조만간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요금과 에너지 가격도 줄줄이 오르고 있다. 도시가스 요금은 올해 초 서울 기준으로 소비자가격이 m³당 417.15원에서 437.17원으로 20원가량 올랐고, 주유소 휘발유 가격도 계속 오르면서 L당 가격이 14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내달에는 고속도로 통행료가 평균 4.5% 오르고 대학 등록금 및 고교 수업료가 7∼10% 인상될 예정이어서 갈수록 서민들의 부담이 늘어날 전망.

“가계부에 왜 저축 항목이 없느냐”는 질문에 J씨는 “들어오는 수입은 뻔한데 물가는 계속 오르고 저축할 여력이 있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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