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시대' 빛과 그늘]<中>‘검은돈’ 모아 치고 빠지기

  • 입력 2004년 2월 10일 18시 47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사돈 민경찬씨의 거액 투자자금 모집 의혹을 계기로 ‘사설(私設) 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민경찬 펀드’처럼 금융감독원에 신고하지 않은 사설펀드는 펀드보다는 계(契)에 가깝다. 원금과 일정한 수익률을 보장하지만 않으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투자자가 누구인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은밀하게 운영되기 때문에 사채(私債), 비자금 등 검은돈이 흘러들어오기도 한다.


▽어떻게 운영되나=사설펀드는 보통 △자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 3, 4명 △자금을 유치하는 마케팅 담당자 2, 3명 △관리직 인원 1, 2명 정도로 운영된다.

펀드매니저들은 대부분 투신운용사 및 증권사 출신이고, 마케팅 담당자는 거액의 전주(錢主)를 고객으로 많이 확보하고 있는 증권사 영업맨 출신이다. 사무실은 주로 서울 강남에 몰려 있다. 통상 맡긴 돈의 1%를 운용수수료로 받고 약정 수익률을 초과 달성하면 초과분의 15∼30%를 성과급으로 받는다.

서울 강남에서 사설펀드를 운용하는 Y사장은 “평소에는 5명 안팎의 투자자들이 맡긴 10억원 미만의 자금을 가지고 주로 증권거래소나 코스닥 주식에 운용하다가 벤처회사 유상증자, 인수합병(M&A), 부동산개발 등 투자건수가 생기면 전주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자금을 모집한다”고 설명했다.

▽시대흐름을 타고 성행하는 사설펀드=사설펀드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돈이 되는 일이면 어떤 투자행위도 가리지 않는다.

중소규모의 상장 또는 등록기업 오너와 짜고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가 차익을 남긴 뒤 해당 오너와 이익금을 나눠 갖는 사설펀드도 있다. 부도위기에 몰린 코스닥 등록기업을 인수해 비상장 또는 비등록 기업과 합병하는 이른바 ‘뒷문 상장(백도어 리스팅)’을 통해 주가를 띄운 뒤 차익을 얻기도 한다. 주상복합이나 아파트를 수십채씩 매집한 뒤 호가(呼價)를 높여 사고팔면서 아파트 값이 폭등하면 거액의 부당이득을 남긴 뒤 빠지는 일도 적지 않다.

사설펀드는 시장상황에 따라 주요 투자 대상을 달리하며 성행해왔다. 벤처 붐이 일 때는 주식투자를 앞세운 사설펀드가 많았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할 때는 부동산투자 펀드가 생겨났다. 최근에는 벤처거품 붕괴에 강력한 부동산 투기 억제책까지 겹쳐 사설펀드가 다소 줄어드는 추세다.

사설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L씨는 “벤처회사 주식 인수, M&A, 주가 조작 등 가리지 않고 투자를 해왔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투자할 만한 대상이 없어 투자자를 모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 개발업자인 K사장도 “부동산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면서 부동산투자 펀드가 많이 줄었다”며 “투자자들이 돈을 회수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사설펀드는 감독 사각지대=제도권 펀드는 금융당국의 추적이나 투자자 보호가 가능하지만 사설펀드는 감독당국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는다.

펀드는 크게 제도권 금융기관이 감독당국이 정한 절차에 따라 투자자를 모집하는 ‘공모(公募)펀드’와 ‘사모(私募)펀드’로 나뉜다.

사모펀드는 투신운용사나 자산운용사가 50명 미만의 소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금융감독원에 등록한 후 운용하는 펀드를 말한다. 50명이 넘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으면 공모펀드이고 금감원에 신고를 해야 한다.

금감원에 등록도 신고도 하지 않는 사설펀드는 펀드의 존재여부나 투자자의 신원을 파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융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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