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FTA 4黨에 협조요청하며 정작 농촌의원 설득은 뒷짐

  • 입력 2004년 2월 10일 18시 52분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과 이라크 파병동의안이 처리되지 못한 데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도 작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물론 노 대통령은 FTA 비준동의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의원, 4당 원내대표 및 원내총무, 3당 정책위의장과 차례로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 올해 1월 초에는 농민단체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이들의 얘기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국회 통과를 적극 저지하고 나선 농촌 출신 국회의원들에 대해선 직접 설득에 나서지 않았다. 1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무산된 뒤 노 대통령에게는 여러 경로를 통해 농촌 출신 국회의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건의가 전달됐지만 노 대통령은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1월 국회에서 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무산된 뒤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이 ‘이 문제는 나에게 맡겨 달라’고 해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미국식 민주주의’를 강조해온 청와대의 이 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청와대의 총선 ‘올인’ 자세도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눈앞에 둔 긴박한 상황에서 정부측 총책임자인 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경우 총선 출마 논란에 휩싸였고, 청와대도 후임자 인선작업에 골몰함으로써 청와대와 정부의 안이한 대처를 불러왔다는 비판이다.

이라크 파병동의안 역시 ‘사실상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에서 반대 기류가 감지됐는데도 청와대측은 적극 설득작업에 나서지 않았다. 비록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도 ‘준(準)여당’조차 설득하지 못해서야 어떻게 정국 주도력을 되찾을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여권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측근인사들과의 청와대 관저 식사회동이 잦은 데 대해 비판론이 일자 앤드루 잭슨 제7대 미국 대통령의 예화를 들며 ‘식탁정치’를 옹호했다. 그러나 국가적 현안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자신의 반대파를 초청해 토론하고 껴안는 식탁 회동은 거의 없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과거처럼 대통령이 국회와 정당을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다”면서 새로운 대통령 리더십을 주창해 왔지만, 정치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이런 태도는 국정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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