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대란…“자고나면 값 뜀박질… 공장 닫을 판”

  • 입력 2004년 2월 10일 18시 58분


인천 서구 경서동 서부산업단지 안에 있는 경인주물공업단지. 자동차부품용 주물을 비롯해 산업용보일러 상수도관을 생산하고 있는 주물업체 40여개가 몰려 있는 이곳은 최근 “이러다가는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주원료인 고철과 선철 가격이 최근 1년 사이에 2배 가까이 폭등한데다가 연료로 쓰이는 코크스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졌기 때문. 코크스의 경우 중국 내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비싼 가격을 주더라도 물건 구하기 자체가 어려워졌다. 주물업체인 A사의 경우 평소 2개월치 고철 및 선철 재고를 유지해 왔지만 10일 현재 남아 있는 재고는 사흘치에 불과하다.

A사의 박모 이사는 “중국이 선철과 고철을 싹쓸이해가면서 국내 유통물량이 줄어든 데다 최근에는 고철 판매업체들까지 가격인상 기대심리로 제품을 풀지 않고 있다”며 “매일매일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주물업체들은 ‘주조산업비상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한 상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국제 원자재 가격=고철을 비롯한 철강 관련 원자재만 오르는 것이 아니다. 장바구니 물가를 끌어올리는 주범인 콩(대두) 밀 옥수수 등 곡물류도 인상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한국수입업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평균 콩 수입가격은 t당 382달러로 1년 전(238달러)에 비해 61% 폭등했다. 같은 기간 옥수수 가격은 122.4달러에서 190달러로 55% 올랐고 밀은 174달러에서 192달러로 10% 상승했다.

이처럼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것은 콩의 경우 생산량이 줄기도 했지만 해운운송료가 급등했기 때문.

통상 철광석과 석탄 곡물류 등을 운반하는 벌크선의 경우 t당 운송료가 75달러로 1년 전(25달러)에 비해 3배로 급등했다. ‘세계경제의 블랙홀’인 중국의 원자재 수입이 급증하면서 상당수 벌크선이 중국에 묶이게 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중국이 벌크선을 싹쓸이하면서 원자재 수입업체를 중심으로 ‘벌크선 확보 전쟁’도 벌어지고 있다. 범양상선 관계자는 “현재 250척 정도의 벌크선을 운용하고 있지만 중국 물동량 급증으로 남아 있는 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CJ 구매담당 정정헌(鄭晶憲) 상무는 “구매 업무를 20년 넘게 해왔지만 ‘이런 일’은 없었다”며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콩과 옥수수 가격이 오르면서 업계는 제품인상 압력을 받고 있지만 이를 사료로 사용하는 축산업계의 어려운 사정 때문에 아직 제품가격 인상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부터 밀 가격이 오르면서 이미 국내 라면업체들은 라면값을 인상하기도 했다.

▽수익성을 위협하는 원자재 가격 인상=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고 있는 타이어업계도 최근 원자재인 천연고무 가격 인상이라는 ‘복병’을 만나 비상이 걸렸다. 천연고무 가격이 중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에서 수요 증가로 급등했기 때문.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t당 평균가격이 917달러였던 천연고무 가격이 1300달러로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타이어의 경우 천연고무 가격이 전체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1% 정도. 이에 따라 한국타이어는 올해 천연고무 가격 상승으로 41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 원가 개선 노력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자동차부품업체들도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원가 부담이 1년 전보다 10∼30% 정도 증가했다. 한 부품업체 자금담당 임원인 박모씨는 “수익성 우려는 물론이고 필요한 원자재를 제때에 구하지 못할까봐 걱정”이라며 “이달에 쓸 철강제품은 구했지만 벌써부터 다음달이 큰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자동차용 강판 가격 인상을 통보받은 완성차업체들도 원가 개선 노력과 함께 “자동차업계 채산성에 악영향이 우려된다”며 철강업체들에 ‘가격 안정’을 건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채산성을 우려해 원자재 수요 자체가 줄어드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수입업협회 박철홍(朴哲弘)씨는 “섬유업체들을 중심으로 아예 수입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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