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시중은행들은 최근 ‘기여도’에 따라 고액에 대한 세분화 및 차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공과금 납부나 예금 입출금을 위해 은행을 찾는 고객들은 분통을 터뜨릴 일이지만 자산이 많은 고객들은 이를 반기고 있다.
국민은행 동역삼지점의 고객인 신모씨(54·여)는 1월 중순 1억원짜리 정기예금에 가입했다. 신씨는 “전에는 뒤에서 항상 다른 고객이 기다리고 있어 은행원과 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면서 “이 지점의 상담실에서 직원과 1시간 이상 얘기를 나누다가 예금에 가입했으며 이후 전담 직원이 자산관리를 상담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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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와 같은 고객이 크게 늘면서 이 지점의 수신 금액은 1월 중 60억원이나 증가했다.
서울 회현동의 우리은행 본점도 거래금액에 따라 고객의 동선(動線)을 분리시켰다.
16일 용돈 10만원을 찾으러 객장에 나온 김모씨(65·여)는 점포 중앙 홀에 있는 전담 직원과 응접 테이블에 마주 앉아 편안히 돈을 찾았다. 반면 같은 10만원을 찾기 위해 나온 이모씨(37)는 객장 한쪽 구석에 마련된 ‘빠른 창구’에 줄을 서야 했다.
예금과 적금으로 3000만원을 이 은행에 맡겨둔 김씨는 ‘중산층 고객’인 반면 이씨는 예적금 100만원 미만인 ‘매스(Mass) 고객’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우리은행 홍승길 영업부장은 “20%의 ‘큰 손님’이 은행을 먹여 살린다”면서 “나머지 80%의 고객은 지점에 나오지 않고 자동화기기나 전화 또는 인터넷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의 특성에 맞춰 운영 시스템을 바꾼 지점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을지로6가에 있는 패션상가 ‘APM’의 운영본부에서 경리일을 보고 있는 신모씨(25·여)는 은행들이 문을 닫는 주말에도 업무를 처리하는 데 불편이 없다.
같은 건물 지하 1층에 있는 하나은행 을지로6가지점이 시장 상인들을 위해 별도로 구성한 5명의 ‘소호금융팀’이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오후 2시∼오후 9시 반에 영업을 하기 때문이다.
김종순 소호금융팀장은 “고객 편의와 은행의 수익을 위해서는 은행의 근무시간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으며 팀원들은 주중에 쉬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은행지점들 “고객과 거리를 좁혀라”=시중은행에 비해 지점 수가 턱없이 부족한 외국계 은행들은 고객과의 ‘접촉 수준’을 높이기 위해 밀착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내 소비금융에 뛰어든 영국계 스탠더드차터드은행은 160여명의 ‘별동대’를 운영하고 있다. ‘DSR(Direct Sales Representative)’라고 불리는 이 조직의 구성원들은 대출실적을 기초로 연봉을 받는 ‘프로 세일즈맨’들이다.
이들은 고객의 직장 주변이나 집으로 직접 방문해 대출상품을 홍보하는 한편 부동산, 세금 문제 등 고객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금융비서’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DSR의 일원인 김모씨(34)는 “오늘은 여의도, 내일은 역삼동, 모레는 인천 식으로 동선을 바꿔가며 하루에 최소 3명의 고객과 접촉한다”면서 “프라이빗 뱅커(PB)와 비슷하게 자산설계사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한번 만난 고객들은 다시 만나는 것을 반긴다”고 말했다.
씨티은행은 변호사 등 고소득층 전문 직업인을 찾아다니며 주식 및 채권형 펀드 가입을 권유하는 ‘펀드 외판원’ 4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외국계 은행인 제일은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부 자동화 무인점포에 직원을 배치하고 있다. 현금 자동지급기를 이용하러 온 고객을 상대로 대출과 예금 상담을 해주기 위해서다.
제일은행 김종철 과장은 “무인점포만 이용하는 고객이 늘고 있어 고객과 접촉도를 높이기 위해 자동화 점포에 직원을 배치했다”면서 “장기적으로 은행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컴퓨터로… 휴대전화로… 은행업무 OK ▼
서울 중구 회현동에 있는 우리은행 본점 영업부에는 사이버상담창구가 3개 있다. 16일 그중 한 자리에 앉아 마이크가 달린 헤드폰을 쓰고 컴퓨터 화면의 ‘상담’ 버튼을 클릭했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 직원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녀도 카메라를 통해 기자를 보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지금 어디 계세요?”
“저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상담센터에 있습니다. 예금 및 대출상품 소개, 이자 문의 등 고객님이 은행에 대해 궁금한 내용을 모두 알려드립니다.”
“손님들이 많이 이용하나요?”
“아직 기자님처럼 호기심에 이것저것 묻는 손님이 대부분입니다.”
이 은행 한승철 과장은 “상담원 두 명이 여러 지점 고객을 상담할 수 있기 때문에 인건비가 줄어든다”며 “고객이 집에서 화상상담을 하는 날도 조만간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정보기술(IT)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은행은 각종 자동화기기를 이용해 인건비를 줄이고 고객은 지점을 오가는 번거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된 것.
주부 김희연씨(34)의 컴퓨터에는 8개 시중은행의 홈페이지가 ‘은행 가기’ 폴더에 들어 있다. 인터넷에 능숙한 김씨는 집안에 앉아 사이버지점을 오가며 은행 업무를 처리한다. IT 덕분에 은행 지점을 찾는 고객들은 출금전표에 비밀번호를 써 넣기 전 주위를 경계하는 일도 사라졌다. 이제 전표에는 비밀번호를 적는 공간이 없다. 대신 창구직원 앞에 설치된 전자비밀번호 입력기를 손으로 누르면 된다.
공과금 납부 날짜를 넘겨 연체요금을 물기 일쑤이던 회사원 최원혁씨(33)는 올해 초 국민은행 모바일뱅킹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이런 문제에서 해방됐다.
모바일뱅킹은 은행과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칩을 휴대전화에 달아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서비스.
최씨는 “인터넷 뱅킹처럼 계좌이체 수수료도 없고 휴대전화가 걸리는 곳에서는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어 주머니에 은행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9월부터 LG텔레콤과 함께 ‘뱅크 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 신한 조흥은행도 SK텔레콤과 제휴한 ‘M뱅크’ 서비스를 다음달 3일 시작한다.
LG텔레콤 현준용 부장은 “현재 37만명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며 “모바일뱅킹은 이동통신사가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좋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외환은행의 ‘인터넷 평양지점’과 대구은행의 ‘인터넷 독도지점’ 등 사이버 공간에 세워진 지점들은 은행 홍보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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